자유 게시판

거미(spider)와 그 남자

신디 3357 2014. 4. 27. 13:17

 하, 여느 때와 달리 주말인데도 그날은 북적거렸다.

 

토요일 오후에 커피 한 잔 하며 휴식을 취할량으로 간 건데 오히려 더 피곤해지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자
잠시 주춤거렸다. 그러나  이내 유리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쪽에서 커피 볶는 맵시 나는 여자가 반갑게 손짓을 해서였다.

 

잠시 후 그 남자도 왔다.  자몽 아이스 티를 앞에 놓고 우리는 그녀를 바라볼 겸 주방 쪽을 바라보고 앉았다. 

영국제 임페리얼블루 덴비(DENBY) 찻 잔이 나란이 놓여있는 그곳을 나는 즐겨 바라보곤 해서다.
어느새 소란할 것 같은 우려도 잊은 채 문득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모습에 친근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그 남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저기...거미가 있어요."

 "네?, 거미요?  얼른 잡아야지요!"  라고 말하며 옆에 있는 넵킨을 건네 줬다. 그남자는 못들었는지

그냥 일어서서그쪽으로 갔다. 아닌게 아니라 오븐 위쪽에 시커먼 거미가 새하얀 벽면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다시  넵킨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지만 그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 뭔가를 찾는 듯했다. 

 

커피 볶는 맵시 나는 여자는 손님 테이블에 커피 서빙을 하다말고 거미를 보자 깜짝 놀라며 "어떻게 하느냐" 고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괜찮다는 듯 눈짓을 보내고 긴 막대 같은 거 혹시 없느냐구

두리번 거리자 그녀는 즉각 파리채를 꺼내 줬다.  이어 하얀 벽면 위에서 거미와 그의 파리채와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카페 안에 손님들도 모두 그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 손님 두 분은 벌떡 일어나더니 요즘 '타란튤라' 수입해와서 사육하는 사람들 많다는데

혹시 그거 아니냐고 무서워 죽겠다며 나가겠다고 계산대 앞으로 왔다. 

벽면에서는 그의 파리채와 거미와의 투쟁이 계속 되고 있었다.  잡히느냐 도망가느냐,

거미로서는 생사를 가름하는 최대의 고비를 맞은 셈이다. 나는 소리쳤다. "얼른 잡아 죽여요!" 

그남자는 역시나 못들었는지 계속 거미를 쫒고 있만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파리채 위에 거미가 올라왔다.  거미를 잡아서 우리는 한숨 놓았다.

왠지 다리도 근질근질 했었으니까. 그런데 그 남자는 거미가 있는 파리채를 들고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했다. 거미를 얼른 밟아 죽이지 않고 뭘하는 거지?  그 남자는 거미를 밖에 놓아주고 준 것이다. 

 미물의 아주 작은 생명도 생명은 고귀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서 죽이라고 다그쳤는데, 

그런 내 자신이 너무나 민망했다.  거미한테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불현듯 그 남자가 참 괜찮아보였다.  그 남자의 모든 것이 느껴지던 그런 시간이었던 거 같다. 

 

 

  

 

Angela Hewitt. piano   

Jesus Christus Kirche, Berlin.08/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