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한 편의 시

신디 3357 2017. 10. 19. 13:55

한 편의 시

 -리아

 

  작년 이맘때였다. 거리에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늦가을 오후, 송 시인한테 전화가 왔다. 시내 라이브 카페 ‘카우보이’에서 시문학 정기모임이 있는데 사진 촬영을 부탁한다고 했다. 시 합평 후에 그날 특별 무대 라이브 재즈연주를 감상하고 음반도 장르별로 갖춰져서 원하는 음악을 신청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와 음악. 나는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날따라 노인병원에 입원해계신 어머니가 감기가 심해 몹시 괴로워하셔서 심란한 데다 바람마저 스산해서 어디든 따뜻한 곳이 그립던 터였다. 모임 장소에 막 도착해서 들어가려는데 송 시인한테서 폰문자가 왔다. 퇴근 무렵 갑자기 일이 생겨 오늘 모임은 못 온다고 사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시문학 모임은 전에도 사진촬영 차 몇 번 와보기는 했어도 그때마다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동인들의 유머와 위트 넘치는 폭넓은 대화와 총무인 박 시인의 냉철하면서도 시어가 곁들여진 은유적인 대화로 차츰 분위기에 동화되었다. 게다가 실내에 흐르는 세미클래식 음악이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는 듯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시문학 모임 핵심인 합평 시간이 되었다. 예술은 이성과 감성이 반반씩 적정선이 유지될 때 비로소 최고의 완성된 작품이 나온다고 들은 것 같다. 총무 박 시인이 진행하는 데 문득 그 생각이 났다. 잘 차려진 음식과 와인을 옆에 두고 자칫 느슨해질 것 같은 분위기인데도 팽팽한 긴장이 지속되었다. 

 

  작품 합평은 권 시인의 「가을 구봉산」, 박 시인의 「아 좋나」, 김 시인의 「전어(錢魚)」를 각자 낭독하고 개개인이 합평, 작가의 변 순서로 진행되었다. 장작불이 타는 듯한 격정적이고도 열정적인 뜨거운 시간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고뇌에 찬, 참으로 심오했던 시간이었다. 나도 문득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 심오한 분위기에 심취되어서 일게다.


  마치 고요한 해안에 한차례 밀물이 밀려오듯 빈 내 가슴에도 시심의 열정이 솟구쳤다. 사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즐겁게 참여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가을날 전어철이 되면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말처럼, 잊었던 詩心이 되돌아온 것 같은 유익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시가 탄생하기까지 고통스러운 산고를 체험하게 했던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물레에서 빚어진 형형색색의 토기들이 고온 1000℃ 이상에서 구워질 때처럼 말이다.


  “상처가 글을 낳고 글이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겁니다.” 라는 손기섭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이글거리는 검붉은 불길 속에서 화염에 휩싸인 토기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것, 시 합평은 그런 것 같았다. 시를 짓기 위해 너무 아픈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시인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 자신을 끝없이 담금질하며 갓 빚어낸 詩야말로 빛나고 값진 보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합평 시간이 끝나고 동인들은 다시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나 역시 시와 함께 어우러져 설익은 과일이 숙성된 것처럼 풋풋한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박인환 시인이 동료들과 둘러앉아 ‘세월이 가면’ 시를 짓던 장면도 떠올랐다. 실내는 아직 라이브 재즈 연주 시간이 아닌지 중앙에 설치된 무대는 비어있고 스피커에서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때의 상념이 시상이 되어 훗날 한 편의 시가 만들어졌다. 시 합평 시간의 뜨거웁고 열정을 표현하고 싶었던 한 줌의 詩가 탄생했다.


 

   

불 지핀 가마,

서서히 타는 불길 속으로

온갖 그리움이 스며든다. 탐욕스러울 만치

갈망하며, 밀고 당기는 명예나 권위 사랑

증오 그리고 빈부 등의 속된 것들이

검붉은 화염에 휩싸여

한 줌의 연기로 승화한다.

한 줌의 詩가 탄생한다.     - 졸시「불꽃」전문

    

 

  시 합평 후 라이브 재즈 음악을 감상했던 것도 그 시간을 소중하게 했다. 하기는 수렁에 빠진 듯 우울함에서 허우적거리던 나였기에 청량제 같던 그 시간이 더욱 뜻 깊었는지도 모른다. 병상에 어머니가 밤늦게부터 차츰 회복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한시름을 놓은 것도 그날을 더욱 기억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끝없는 고통이 따르는 것 같다. 한 편의 시를 짓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그렇더라도 시인은 시 짓기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삶 일부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