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어머니에게 드리는 글

신디 3357 2018. 4. 6. 19:06

어머니에게 드리는 글

  - 리아

 


   "어머니, 이대로 가시렵니까. 눈을 좀 떠 보세요!"

어머니는 의식이 거의 없으셨다. 숨이 막힐 듯한 잦은 기침이 멎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전혀 기척이 없으셨다. 나는 병실 밖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요, 우리 어머니가 숨을 안 쉬는 거 같아요!"

나는 불현듯 빛 한줄기 없는 캄캄한 동굴 안에 갇힌 것처럼 두려움이 앞섰다. 의료진이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담당 의사가 응급처치를 하자 어머니는 간신히 숨을 내 뱉듯이 한숨을 푸우 내쉬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내 입을 꼭 다물고 눈도 꼭 감고 미동 없이 반듯하게 누워계셨다. 나는 몇 번이나 어머니 가슴에 손을 대곤 했다. 그때 마다 따뜻한 온기가 손에 전해왔다.



   그러나 지난 6월초, 어머니는 끝내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6남매 중에 둘째 아들과 두 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는 노환으로 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해 계시면서도 주기적으로 고비를 힘겹게 지나 오셨다. 우울증을 앓고 계시기에 다른 노인성 질환과는 달랐다. 4년 여 입원해 계시면서 정말 단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건 언제 입을 다물지 몰라서였다. 입을 다물면 식사는 물론이고 말을 할 수 없어 몸에 상처가 나도 어디가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그저 신음소리만 낼 뿐이니 그것을 그저 바라보고 있어야하는 딸로서는 정말 억장이 무너졌다. 

   


   나는 어릴 적에 엄살이 심했었다. 체하거나 감기가 들어서 조금만 아파도 엄마를 내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었다. 잠들었다가 깨서 엄마가 옆에 없으면 소리 지르며 투정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어머니도 그러셨다. 내가 안보이면 눈으로 찾으셨다. 말을 못하고 몸을 못 움직이시니까 눈동자로 찾으려다 어느 때는 하얗게 흰자위만 남기도 했다. 저녁나절 어머니의 흰자위가 먼저 병실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하루 온종일 기다리다 지쳐 흰자위가 거무스레해지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거짓말처럼 어머니가 숨을 거두시자, 이렇게 가시는데 좀 더 많이 어머니 곁에 있어드리지 못한 것이 한없이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다. 가슴에 못을 박는다 한들 이렇게 아플까. 하긴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평생을 기다림 속에 사셨는지도 모른다.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순종하며 막 여문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6남매의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면서도 어머니는 한 가닥 기다림이 있기에 행복하셨던 거 같다. 매일 저녁 된장국을 끓여놓고 외출한 식구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일도 즐거우셨지만, 가족이 둥근 상에 빙 둘러앉아 하루 일을 이야기할 때는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제일 크셨다. 지금껏 살면서 어머니의 그 큰 웃음소리가 든든한 힘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주 외국에 있던 조카들이 할머니 소식을 뒤늦게 알고 잠시 귀국하여 성묘를 다녀왔다. 조카들은 할머니와의 즐거웠던 일들을 신바람 나서 말하다가도 울먹이며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방학 때 할머니랑 보문산 놀이공원에 갔던 일이며 할머니가 해주시던 새우튀김, 오징어튀김, 야채튀김, 계란케이크, 김밥 말이 등 정말 맛있었다며 음식점에서 사먹어도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이 아니었다고 눈물이 글썽였다.


   조카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머니는 자식인 우리보다도 손주, 손녀 사랑이 더 크셨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가셨지만 이렇듯 어머니의 향기는 우리 가족들 가슴 속에 남아 언제나처럼 우리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실 것이다. 


  

어머니 삼우제(三虞祭)를 지내고

 

지난 6월초, 싱그러운 푸르름이 절정을 이루는

삼나무 우거진 숲 속 오솔길

매년 이맘때는 어머니와 산나물을 캐러

황톳길을 걷던 그길


 

평소 같으면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걸었을 그 아름다운 길에 오늘은 눈물을 흩뿌리면서

어머니의 가시는 길을 전송한다.


 

발길 닿는 걸음마다

들꽃들은 빙긋이 미소 짓는다. 각시붓꽃,

노랑무늬붓꽃, 부채붓꽃...


 

생전에 좋아하시던 붓꽃 가득 핀 산마루에서

이제 어머니는 깊은 잠을 청하시겠지


 

사랑하는 엄마,

편안히 잠드세요. 사랑해요, 엄마!




―첫 수필집『내 마음의 첼로』(2017년) 수록
* 대전 출생. 2010 『시에』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