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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된 황지우 시인

신디 3357 2012. 6. 6. 07:15

2006년 04월호
 
[새로운 도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된 황지우 시인

“창의적인 교육으로 백남준 같은 예술가를 많이 길러내고 싶습니다”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김형우 기자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의 시집으로 널리 알려진 황지우 시인이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으로 임명됐다. 문학뿐 아니라 연극, 미술, 사진 등 다방면을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에서 대학 총장으로 변신한 그의 굳은 각오와 예술관을 들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

황지우 시인(54·본명 황재우)을 만나러 가는 길.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로 향하던 차 안에서 그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떠올렸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시인이자 미술, 연극 분야까지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인 그와의 만남을 두 달간 설레며 기다려 왔기 때문. 지난 1월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3월에 보자”며 약속을 미룬 바 있다. 당시 강원도 인제 백담사 만해마을에 틀어박혀 시 창작에 몰두했던 그는 올 봄 새로운 임무를 짊어지고 속세로 돌아왔다.

황지우 시인이 문인으로는 처음으로 3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예종)의 총장에 취임했다.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 예술총감독으로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 그의 총장 선출 배경으로 알려졌다.

3월4일 오전 예종 본관의 총장실을 찾았을 때, 그는 총장 업무를 보고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책상 위에 한가득 쌓인 해외 유명 예술대학에 관한 자료들은 총장으로 출발하는 그의 각오를 보여주는 듯했다. “시를 써야 할 분이 갑작스럽게 웬 대학 총장이냐”는 질문에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지난해 12월 총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대학사회라는 것이 저 혼자 있는 곳도 아니고, 세끼 밥을 주는 이곳에서 해결해나갈 산적한 과제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주변의 요구를 칼같이 잘라버리고 시인의 길을 가야 했는데, 모질지 못해 덤터기를 썼어요. 그래도 50대라는 나이는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등뼈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시인이 좋아도 이제는 세상의 허리로서 자기만의 삶을 주장할 나이가 아닌 거죠.

마치 군대에 두 번 가는 기분으로 총장직을 받아들였습니다. 20대 남성들이 국가를 위해 청춘을 다 바쳐 봉사하듯이, 저도 제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관리자의 역할을 요구받고 징집된 겁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행사 총감독이 ‘공익근무’라면, 예종 총장은 ‘제 2의 군 복무’

사실 올해 그는 안식년 휴가를 받아 몽골 초원으로 떠날 생각이었다고. 당뇨 등을 앓아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큰 행사를 준비하면서 계속 밤샘 작업을 한 탓에 그는 지난해 독일에서 귀국한 뒤 닷새를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러나 ‘생애의 마지막 공익근무’라고 여겼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총감독 일을 마치기가 무섭게, 예종 총장직을 수행하라는 ‘제 2의 군 복무’ 요청이 떨어진 것이다.

황 총장은 흔히 ‘1980년대 엄혹한 권위주의 체제를 파격적인 언어로 비판한 저항시인’으로 통한다. 73년 서울대 미학과 재학 시절 박정희 정권에 항거한 학내 시위사건으로, 80년엔 5·18민주화운동에 연루돼 구속된 전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끔찍한 5월의 광주를 목격한 상처와, 고문에 못 이겨 동료를 배신했다는 자괴감으로 시를 토해냈다.

그는 김수영 문학상, 소월문학상,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쓴 위대한 시인이었지만 주류 사회에선 늘 소외돼왔다. 시위 전력으로 대학원에서 쫓겨나고 학교를 옮겨다니며 어렵게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력서를 숱하게 냈지만 강사 자리 하나 제대로 얻기 힘들어 고향인 광주로 돌아가 조각에 전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의 은둔’을 주장하며 무정부주의자처럼 살아온 그도 이제는 제도권 안으로 진입했다. 문화관광부 소속 한시 기구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의 총감독을 맡아 나랏일을 시작했고, 이제는 국립예술학교의 총장까지 됐으니 말이다. 체제에 순응하는 것도 모자라 문화 권력까지 잡았으니 그가 변절해버리는 건 아닐까. ‘혹시나’ 하는 염려에 대해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항변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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