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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정현종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신디 3357 2012. 8. 11. 15:58

 

[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정현종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기사입력 2012-07-14 03:00:00 기사수정 2012-07-14 10:50:55

 

 

안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알았다고 깔깔거릴 것도 없고
낄낄거릴 것도 없고
너무 배부를 것도 없고,
안다고 알았다고
우주를 제 목소리로 채울 것도 없고
누구 죽일 궁리를 할 것도 없고
엉엉 울 것도 없다
뭐든지간에 하여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
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
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
그 어떤 모습이거나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 정현종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서울중앙우체국 옆에 설치된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작품. 플라토 제공

붐비는 시내를 걷다 무심코 고개를 든다. 빌딩 숲 사이에 솟은 옥외 광고판에 설명 없는 흑백 사진이 붙어 있다. 두 사람이 함께 누웠던 흔적만이 남은 흐트러진 침대.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하는 광고이지 싶은데 그게 아니다. 한 미술관이 열고 있는 전시 중 일부로 전시장 밖에 나온 현대미술 작품이다.

미국 작가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1957∼1996). 동성애자 연인이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뒤 공허함과 무상함을 담아 광고판을 세웠다. 그는 이처럼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의 작업을 여럿 남겼다. 통상 미술관에선 ‘작품에 손대지 말라’고 하는데 이 사람 전시에선 마음대로 만지고 집어가도록 사탕과 포스터 더미를 쌓아둔다. 저 사탕이 다 없어지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할 필요 없다. 작가는 원본의 개념을 지닌 ‘물건’ 대신 복제할 권리를 담은 ‘증명서’를 남겼다. 그래서 사탕이 줄어들면 또다시 채워준다. 애인과 같은 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았던 그는 시간을 뛰어넘는 작품을 궁리한 끝에 이런 방법을 고안했다.

일상의 사물로 삶의 덧없음과 영속성 간의 고리를 표현한 작업을 보면서 문득 정현종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그의 작품 역시 보통 사람이 쓰는 수더분한 일상어로 무상한 인생을 관조하는 깨달음을 길어 올린다. 평론가 김현에 따르면 정 시인은 ‘이 세계에서의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믿는 비관적 현실주의자이면서 이 세계의 무의미성과 싸울 수 있다고 믿는 낙관적 현실주의자’이다. 그렇게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양면성을 기반으로 삼는 시는 세상을 향해 들어올린 거울처럼 오늘 우리의 속된 마음을 고스란히 비춘다. ‘애초부터 기약된 죽음’ 앞에서 남보다 앞섰다고 우쭐대거나 왜 나만 고통스럽냐고 투정하느라, 안 그래도 사람으로 붐비는 삶을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탐욕과 어리석음 말이다.

대학 시절부터 노년까지 하버드대 출신 200여 명의 인생을 추적한 장기 연구를 이어받은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의 조건’이란 책을 펴냈다. 그 결론은 삶의 만족도가 고통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보다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시인의 직관과 통찰력은 방대한 학술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을 한 편의 시로 응축해 내기도 한다.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는 꽃 같은 삶, 여기에 대처해 행복을 얻는 지혜가 그 안에 오롯이 살아 숨쉰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