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순천만 갈대밭 깊숙이 철새처럼 몸을 숨기고 신경림 시인의 시 ‘갈대’의 한 구절처럼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또다시 절감한다. 이 가을엔 슬픔도 힘이 되고 쓸쓸함도 일용할 양식이 되는 법. 갈대밭에 생의 그 무거운 짐들을 마치 가벼운 깃털처럼 내려놓고 곽재구 시인이 좋아하는 와온바다를 둘러보았다. 갈 때마다 변하면서도 언제나 그대로이니 무상하면서도 여여했다.
그런데 와온에서 갈대밭 너머 마주 보이는 화포로 가는 일출길에서 이 무슨 희소식인가, 낭패인가. 그야말로 ‘화들짝’ 피어난 벚꽃들을 보았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바닷가 벚나무 가로수들이 저마다 팝콘 같은 꽃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봄의 벚꽃들이 가을빛 완연한 시월에 철없이 피었으니 이는 분명 ‘활짝’이 아니라 꽃들에게도 내게도 ‘화들짝’이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불시개화였다. 봄꽃들의 때아닌 개화는 강한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잎잎이 거의 다 떨어지면서 생기는 ‘불시개화’ 현상이었다. 제주도며 남서해안 곳곳에 벚꽃과 배꽃 등이 피었다. 연이어 강타한 태풍 볼라벤 등의 위기가 마침내 꽃들을 밀어 올린 것이다. 가을 단풍잎이 더없이 아름다워야 할 벚나무 아래서 단풍잎 대신 하얀 꽃잎들을 마주하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충남 보령에 사는 처녀시인 박경희가 등단 10년이 넘어서야 이 가을에 막 펴낸 첫 시집 『벚꽃 문신』이 떠오르고, 섬진강 첫 매화를 피웠던 문암마을의 팔다리 잘린 매화나무도 따라왔다.
그리고 ‘위기의 꽃들’은 우리 현대사에도 수없이 피어났다는 사실이 뒷골을 엄습했다. 이름하여 베이비부머였다.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위기는 1955~63년 사이 마치 ‘공해에 시달리는 남산의 소나무가 수많은 솔방울을 매달 듯이’ 베이비부머라는 신조어로 태어났다. 그만큼 더 가난했지만 모두들 이를 악물고 한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거나 민주화의 디딤돌이 되었다.
나는 며칠 전 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한 서울에서도 그 가능성을 보았다. 마포구 성산동의 성미산학교에서 열린 ‘시가 흐르는 밤’과 서초구 반포2동의 ‘시가 흐르는 마을’ 행사에 참가하면서 서울에서 막 피어나는 환한 벚꽃들을 본 것이다. 성미산학교는 초·중·고 과정의 대안학교다. 이 마을의 학부모들은 마을기업 형태의 식당과 빵집, 카페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특히 이날 저녁행사에 ‘시장(詩場)’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자신이 아끼던 물건을 들고 나와 관련 시를 낭송하면 누군가 답시를 낭송해야 그 물건을 받는, 말하자면 시를 통한 물물교환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반포2동도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파랑새공원에다 수백 편의 시화를 걸어놓았다. 이 가을에 도심 공원이 시의 천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강남과 강북에서 서로 다르게 또 같이 피어나는 문화공동체의 꽃, 화들짝 핀 위기의 꽃이 아니라 위로의 꽃, 위안의 저 활짝 핀 꽃들을 보았다. 카르페 디엠, 누구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다.
이원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