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수첩/국내여행

마음여행 ①제주 가파도

신디 3357 2013. 6. 2. 06:56

여행

어차피 섬 안이니까 따로 또 같이

마음여행 ①제주 가파도 다음라이프 | 위즈덤하우스 | 입력 2013.05.31 13:46 | 수정 2013.05.31 13:48

 

가파도에는 끓어오르는 열정을 어쩌지 못하고 밖으로 꺼내듯 하염없이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울어대는 푸른 청보리밭이 무려 17만 평이 펼쳐져 있다. 청보리축제가 열리는 즈음의 5월의 가파도는 그 아름다운 풍경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기도 하다.

모슬포항에서 출발해서 20여 분 만에 가파도의 상동포구에 도착하면 아담한 섬마을이 나타난다. 모슬포항과 마라도 중간에 위치한 섬 안의 또 다른 섬. 파도가 심해서 가파도라 불린 이곳에 현재는 연로한 해녀들만 남아있고 적막함이 감돌던 그 섬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들기 시작한 것은 제주올레길 10-1코스가 그 섬에 열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5에 불과한 이 작은 섬에 길을 내며 제주 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가파도 올레는 올레꾼들에게 잠시 쉬어가라 내어주는 작은 선물이다"라고 했다는데 딱 맞는 표현이라는 걸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발고도가 20.5미터에 불과한 가파도는 낮은 섬이다. 집도, 돌담도, 그리고 무덤도 낮다. 낮은 그것들을 넘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 홀리고, 얼기설기 얽혀 있는 전봇대 위 전선에도 홀리고 그 전선 사이사이로 파도처럼 흘러가는 바람에도 홀리게 된다. 유난히 붉은 섬이 품고 있는 낮은 대지의 색에도 홀린다.

송악산과 산방산을 등지고 청보리밭 사잇길을 꼬닥꼬닥(천천히) 걷는 이들의 얼굴이 너무나 평화로워 그 표정에도 홀리게 된다. 가파도에서 볼 수 있는 집담과 밭담에도 홀려서 나를 홀리게 하는 그것들과 한참을 노닐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고요함에 또 깜작 놀라 홀리게 된다.

선사시대 고인돌 56기가 산재해 있는 가파도 청보리밭 사잇길에서는 절로 노래가 나오고, 서로의 노랫가락에 위안을 얻게 되니, 바로 가파도가 안식의 섬이고 휴식의 섬인가 보다.

빠르고 느리고, 때론 거세게 그러나 또다시 부드럽게 우리를 홀리는 가파도의 바람과 청보리와 마을 안쪽의 관음상에도 마음을 주다 보니 때때로 가파도에서 나와 손양은 서로를 잊고 잃게 되기도 했다.

살다 보면 내가 가는 길 위에서 때로 길을 잃기도 하고, 그 어딘가로 나를 이끌어줄 누군가를 찾아 또 헤매게 되는 때도 있다. 가파도에서 나와 손양은 바람에 잠시 홀려 길을 잃기도 하고 그리고 서로를 잃고 찾아 헤매기도 했다. 그런데도 혼란스럽지 않고 불안하지 않았다. 그냥 어딘가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을 것만 같기에 묵묵히 걸을 뿐이고 내가 찾는 그 누군가 역시 그렇게 가다 보면 만나지리란 믿음이 있었다.

수많은 올레 중 유일하게 마지막에 다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가파도 올레가 나에게는 그래서인지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끝이 시작이고 그 시작은 언제든 끝이 될 수 있는 길이다.

푸른 청보리밭과 노란 유채 꽃과 보라색 갯무꽃이 어우러진 4~5월의 가파도는 얼마나 아름다울 까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이내 가파도로 가는 작은 통통배 안에 실어 져 상동포구 가파리 어촌계 매점에서 뜨거운 어묵 하나를 먹고 있다.


출처 : 열살전에 떠나는 엄마 딸 마음여행
저자 : 박선아 지음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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