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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첩/새빛문화아카데미(시,수필 창작반)

[수필]드라이용 머리빗

[수필]드라이용 머리빗 / 리아

 

 

     그날 여정을 마치고 저녁에 숙소로 들어와 여장을 풀 때였다. 후배가 먼저 샤워를 한다며 드라이용 빗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내게 빌려 달라고 하여 선뜻 내 줬다. 그녀가 샤워를 하는 동안 나는 짐을 정리하고 TV를 보며 쉬고 있는데 그녀가 욕실 문을 열더니 머리 말린다며 빗을 달라고 했다. 좀 전에 주지 않았냐고 되물었더니 그녀는 금시 초문인양 빗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급히 그녀가 앉아있던 화장대 위를 보았지만 빗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가방 속에서 빗을 꺼내 분명히 그녀한테 준 것 같은데 그녀는 받지 않았다고 하니까 말이다. 내 가방 속에 있는 물건을 다 쏟아놓고 몇 번이나 하나씩 다시 가방에 넣어도 빗이 보이지 않았다. 출발 직전 집을 나오면서도 식탁 위에 빗이 없던 것을 확인했던 터였다. 드라이용 머리빗인데 크기가 작아 여행 갈 때만 갖고 다니는 것으로 큰 가방 속에 항시 넣어 두었기에 전날 밤에 꺼내 식탁 위에 놓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빗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빗을 가져 온 것은 분명했다. 후배가 욕탕에 목욕물을 받는 동안 TV를 켜는 둥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그만 룸 어딘가에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무심코 그녀 가방 속에 넣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는 어디든 나와 둘이 가면 무심코 내 것을 자주 그녀 가방 속에 넣곤 했었다. 하다못해 골프클럽 숏 게임을 하러 가서도 자주 내 공을 쳤었다. 숏 게임을 할 때는 라운딩 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때면 공을 두세 개 놓고 연습을 하기도 하는데 후배는 그때 마다 그린 가까이 있는 공은 자신이 홀 안에 다 넣었다. 나중에는 참다못해 내 공에 매직으로 큼직하게 내 이니셜 M자를 써 놓아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무심코 빗을 그녀 가방 속에 넣었을 지도 모를 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화장대 옆에 그녀 가방이 열려진 채 있기에 슬며시 들여다보았지만 그러나 빗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실내 옷 한 벌만 갖고 왔는지 꺼내 입고 나니 가방이 텅 빈 채였다. 도대체 빗이 어디에 있는 걸까.

 

    그 빗은 흔하고 가격도 일천 원으로 저렴한 것이지만 여행 갈 때마다 갖고 다니며 사용하던 것으로 손에 익어선지 유난히 애착이 갔다. 무엇보다도 이튿날 아침 머리 말릴 때 사용해야 하는데 빗이 없어졌으니 정말 난감했다. 그곳은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호텔 주변에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룸 구석구석을 스마트폰 손전등으로 비춰가며 빗이 있는 지 둘러보았지만 허사였다. 나는 괜히 우울해졌다.

 

   나는 어디에서건 내 물건은 잘 챙기는 편이다. 우리 속담에 ‘도둑놈은 한 죄(罪), 잃은 놈은 열 죄’ 라고, 도둑은 물건을 훔친 죄 하나 밖에 없으나, 도둑맞은 사람은 간수를 잘하지 못한 죄, 훔칠 마음을 일게 한 죄, 남을 의심 하는 죄 등 여러 가지 죄를 짓게 된다는 말이 있어서다. 그렇기에 친한 친구 사이에서 조차도 각자의 물건은 소중하게 간수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자연 옆에 사람을 의심하게 되는데 만일 상대가 전혀 가져가지 않았는데도 의심을 하거나 받게 되면 서로 상처를 받는 것 같다.

 

  오래전 친한 친구와 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한국에 거의 도착할 즈음 친구가 선반 위에 얹어 놓았던 쇼핑백을 꺼내 놓고 짐을 정리 하던 중 깜짝 놀랐다. 방금 전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아이크림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고급 화장품으로 값비싼 것이다. 나도 그것을 사고 싶은 마음에 몇 번이나 만져보다가 너무 비싸서 그만 두었는데 그 친구는 두 개나 구입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얼굴까지 하얗게 되어 의자 위에 올라가서 선반 내를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면세점에서 산 것으로 쇼핑백에 짐이 많아 그 위에 그냥 올려놓은 것이 그만 흘러 떨어졌던 것이다. 선반 위에는 다른 사람들의 짐도 가득했었다.

 

  친구는 나를 의심했다. 그 쇼핑백 옆에 내 손가방이 있었는데 혹시 내 가방 속에 들어갔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구나 화장품 가격이 너무 비싸서 내가 못 샀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녀였다. 나는 기분이 너무 나빴다. 비행기를 타고부터 단 한 번도 선반을 열어본 적이 없었는데 나를 의심하다니. 그러나 그녀는 그런 내 맘은 안중에도 없는 듯 혹시 모른다고 가방을 한번 보자며 채근을 했다. 나는 물론 가방을 열지 않았다. 전날 밤 호텔에서도 낮에 구입한 고급 브랜드 백과 옷 등을 꺼내 밤새 바스락대며 수선을 피워 나는 잠을 설쳤다. 그런데 이젠 도둑 누명까지 씌우다니 섭섭하기 이를 데 없어서였다. 우리 둘은 결정적으로 그 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지고 말았다.

 

  나는 문득 그때 생각을 하며 드라이용 빗 생각은 그만 잊기로 했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뜸 식탁 위를 쳐다보았지만 빗이 없었다. 옷도 벗지 않은 채 큰 가방을 열어 빗을 찾아보았지만 가방 속 어디에도 없었다. 뭔지 모르게 허탈한 마음을 추스르며 가방을 정리하고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으려고 뒤 베란다로 나갔다. 그런데 바닥에 무엇인가 눈에 띄어 다시 보니 이런, 빗이 아닌가! 빗을 가방 속에 넣으려고 들었다가 세탁이 끝나는 소리에 빗을 든 채 나가서 빨래를 꺼내다가 그만 놓친 것이었다. 내 불찰로 빗을 떨어뜨리고 간 것을 하마터면 후배를 의심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