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천경자 작품 위작 의혹.."서명 다르다"(종합2보)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천경자 작품 위작 의혹.."서명 다르다"(종합2보)

미술품 감정 전문가 이동천 박사 신간 '미술품 감정비책'서 주장 화랑 대표 출신 소장자 "1981년 천 화백에게서 직접 받아" 연합뉴스 | 입력 2016.07.21. 23:14 | 수정 2016.07.21. 23:14

 

미술품 감정 전문가 이동천 박사 신간 '미술품 감정비책'서 주장

화랑 대표 출신 소장자 "1981년 천 화백에게서 직접 받아"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천경자 화백 1주기를 맞아 서울시립미술관이 전시 중인 천 화백의 작품 가운데 한 점이 위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술품 감정 분야 전문가인 이동천 박사는 21일 출간한 책 '미술품 감정비책'(출판사 라의눈)에서 내달 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어지는 천 화백의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에 걸린 107점의 작품 중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한 1979년작 '뉴델리'가 위작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국 서화 감정의 최고봉인 양런카이(楊仁愷·1915~2008) 선생으로부터 서화 감정학을, 중국 국학 대가인 펑치용(馮其庸) 선생으로부터 문헌 고증학을 각각 사사한 이 박사는 1999년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감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대학원과 명지대대학원 등에서 감정학 강의를 한 전문 감정학자다.

이 박사는 이날 오전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출간 기념 간담회를 열어 '뉴델리'를 위작으로 판정한 이유를 각종 사진 자료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 박사는 가장 먼저 그림 왼쪽 아래의 서명을 문제로 삼았다.

다른 작품에서 나타나는 천 화백의 서명 습관과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다.

'뉴델리'의 제작연도 표기(사진 맨 왼쪽)를 보면 1979년을 한문으로 표기한 '一九七九'에서 '七'의 마지막 필획 끝이 아래로 향하듯 멈춘 것이 보인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쓴 같은 글자들은 모두 필획의 끝이 위를 향한다. [라의눈 제공]

이 박사는 특히 앞글자 '뉴'에서 'ㅠ' 자의 왼쪽 획이 바깥쪽으로 삐쳐 있는 점을 지적했다. '뉴'라는 글자가 들어간 천 화백의 다른 서명 10여 점을 모두 찾아 비교해도 이렇게 왼쪽 획이 바깥으로 삐친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비슷한 시기 그린 '뉴델리'와 '뉴델리동물원'을 비롯해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뉴욕 센트럴파크', '뉴멕시코아바끼', '뉴멕시코타오스', '서커스 뉴욕', '뉴올리앙즈 프리저베이션홀' 등 제목에 '뉴'가 들어간 작품 사진을 근거로 제시했다.

게다가 위작으로 지목한 '뉴델리'의 서명에는 개칠(덧칠)한 흔적도 있다고 이 박사는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개칠 자체가 위작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지만 천 화백은 심지어 서명에 오타가 있어도 고치지 않을 정도로 서명을 한번에 끝내는 습관이 철저했다는 것이다.

'뉴델리'의 서명을 자세히 보면 덧칠한 흔적이 보인다. 사진 맨 오른쪽 줄의 빨간색 표시가 덧칠한 부분이다. [라의눈 제공]

실제 천 화백은 1981년작 '폭풍의 언덕'을 '폭풍의 억덕'으로 잘못 표기했지만 이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

심지어 마음에 안 드는 문장은 그 위에 줄을 그은 뒤 낙관을 찍기도 했다.

또한 1979년작 '뉴델리동물원'에선 글자가 번지며 뭉개졌지만 개칠하지 않았으며 1997년작 '브로드웨이 나홀로'는 안료가 바탕에 잘 먹지 않았음에도 개칠하지 않았다. 작품에 서명까지 마친 뒤 다시 색을 입힌 경우에도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서명을 피해 색칠을 할 정도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의 서명에선 개칠한 흔적인 안료 뭉침 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는 위조자가 천 화백의 서명과 어떻게든 비슷하게 하려다가 남은 흔적이라고 이 박사는 주장했다.

'뉴델리'의 '뉴'(사진 왼쪽)와 서명에 '뉴'가 들어간 천 화백의 다른 작품(사진 오른쪽)을 비교한 사진이다. 다른 작품에선 'ㅠ'의 왼쪽 획이 바깥쪽으로 삐친 사례가 없다. [라의눈 제공]

특히 서명 아래 작은 점이 찍혀 있는데 이 점은 서명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서명한 흔적이며 사진을 색 분해 해보면 지워진 글자의 존재가 확인된다고 이 박사는 설명했다.

이 박사는 아울러 글씨를 쓰는 속도나 필획의 성격도 천 화백의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1979년을 한문으로 표기한 '一九七九'에서 '七'은 느린 속도로 쓴 글씨로 마지막 필획의 끝이 아래로 향하듯 멈췄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쓴 같은 글자를 보면 모두 필획의 끝이 위를 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박사는 "위작을 만드는 사람의 글씨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위작을 판별하는 시작점도 바로 이러한 긴장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델리'에서 서명 부분만 확대한 사진. '뉴'의 'ㅠ'자 왼쪽 획이 바깥쪽으로 삐쳐있다.

서명과 별개로 이 박사는 천 화백의 다른 그림에서 발견되는 검정색이나 고동색 펜 드로잉 흔적이 '뉴델리'에선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천 화백의 그림은 아무리 채색이 두터워도 군데군데 펜 드로잉 흔적이 발견된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뉴델리'엔 검정색이나 고동색 펜 드로잉 흔적이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가짜"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인도'도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도판만 봤을 뿐"이라고 전제한 뒤 "1974년 이후 천 화백의 여인상을 보면 밑바탕에 펜 드로잉 필선이 있지만 1977년 그렸다는 '미인도'에는 이 펜 드로잉 필선이 없다. 흰색과 노란색으로 채색한 화관의 꽃에서도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천경자 화백 1주기 추모전에 전시된 '뉴델리'.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해 전시한 그림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아울러 '미인도'의 인중 부분을 자세히 보면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인중을 표시한 것이 확인되는데 천 화백의 다른 작품에선 인중이 역삼각형이나 윤곽선 형태로만 나타나는 점도 주목해볼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게 된 이유에 관한 물음에 "이 작품이 전시관 구석에 있어 사람들 눈에 잘 안 띈다. 이렇게 놔뒀다가는 추모전에 전시작이 걸렸다는 빌미로 '신분 세탁'을 하게 될까 봐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박사의 문제 제기에 대해 서울시립미술관 홍보담당자는 "여러 차례 이뤄진 감정을 문제없이 통과한 작품"이라며 "천 화백과 오랜 기간 인연이 있는 임경식 전 이목화랑 대표가 천 화백으로부터 직접 구매한 것이어서 위작 논란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임경식 전 이목화랑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아마 당시 화랑 대표들 중 내가 천 선생님과 가장 친했을 것"이라며 "1981년 천 선생님이 현대화랑에서 크게 전시를 한 뒤 받은 2점 중 1점"이라며 "당시 고등학교 동창에게 200만원 정도 받고 팔았다가 몇년 전 되샀다"고 매입 경위를 밝혔다.

천경자 작품에 위작 의혹 제기한 이동천 박사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 중인 천경자 화백의 작품 중 한점이 위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이동천 박사. 이 박사는 21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천 화백의 1주기 추모전에 걸린 '뉴델리'의 서명이 천 화백의 서명 습관과 많이 다르다며 위작 의혹을 제기했다.

임 전 대표는 이어 "그 친구가 20여년을 계속 갖고 있다 보니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어 낯설어 보이지만 아주 재미있는 그림이다. 코끼리에 탄 두 남성도, 코끼리도 각각 표정이 다 있다. 코끼리 등에 얹은 양탄자 카페트 문양 같은 걸 보면 선생님이 아니면 그렇게 못한다"고 강조했다.

luc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