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른텐(Kärnten)의 추억(낯선 풍경)

케른텐(Kärnten)의 추억 

-리아

 

 

오스트리아 케른텐(Kärnten)지방으로 3주간 휴가를 갔을 때다. 독일 하노버에 살고 있는 친구가 초대장을 보내와서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 일행과 합류했다. 케른텐州는 오스트리아 남부에 위치한 알프스산맥이 있는 지대로 자연경관이 다채롭고 아름다워서 독일인들에게 잘 알려진 고급휴양지라고 한다.

나는 케른텐에 가기위해 하노바 친구집에서 며칠간을 지냈다. 그녀는 직장일로 독일에 왔지만 거의 10여년간 거주한 때문인지 독일어가 능통한 것은 물론이고 생활방식도 거의 독일인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휴가를 보내는 독일인은 대개의 경우 3주간 일정으로 한곳에 있으면서 휴식도 취하고 그 근방의 관광지나 유적지를 관람한다고 한다. 친구도 여행을 떠나오기 전날까지 서점에 가서 케른텐州는 물론이고 그 주변에 관한 여행 자료를 구입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여행 중에도 일정한 지방에 이르면 반드시 ‘관광 안내소’ 에 들러서 그곳에 비치된 안내 지도를 보면서 유적지나, 교회, 산, 아름다운 호수 등을 찾아다녔다. 그런 친구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 휴가를 즐긴다기보다는 마치 ‘역사 탐사 팀’을 이끄는 탐방대원의 리더만 같았다. 예전에 발길 닿는대로 어디든 떠났던 감수성이 풍부했던 내 친구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한편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욱이 식사를 할 때마다 매번 독일식으로 격식을 따져서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독일 하노바 공항에 도착하고부터 뭔지 모르게 불편했다. 이국의 아름다운 정서에 도취되어 여행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은 은근히 중압감에 눌려 있었던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단연 독일어 때문이었다. 최소한의 단어라도 익히기 위해서 몇 달 전부터 독일어를 열심히 배웠지만 정작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표준독일어를 배운 내가 지방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서였다.

하루는 친구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잠깐 마을 어귀로 산책을 나갔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동네사람인 듯한 행인에게 친구가 사는 동네이름을 물어보았지만 그 지방의 사투리가 심해서였는지 그는 고개만 갸우뚱 할뿐이었다. 나는 정말 난감했었다. 다행히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면서 나를 찾기에 되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정말 아찔했다. 외국어를 배울 때 지방사투리도 반드시 익혀야하는 것을 절감했던 순간이었다. 그 때문인지 여행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케른텐으로 떠나던 날, 우리 일행은 새벽 3시경 하노버를 출발한 후 줄곧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이동했다. 온종일을 달려 저녁나절 오스트리아 국경에 위치한 중간 경유지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오후 늦게 목적지 케른텐州의 작은 도시 오씨아흐(Ossiach)에 도착했다. 이 지방은 알프스산맥의 줄기로 숲과 넓은 들판, 수많은 크고 작은 맑은 호수와 절경이 뛰어난 높고 낮은 산들이 어울어져서 등산과 스키 수영을 함께 즐길 수 있어서 휴가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친구가 귀뜀해 주었다.

우리는 오씨아흐 호반(Ossiacher See)에 있는 R펜션에 여장을 풀었다. 짐을 정리하고 거실 통유리 밖을 바라보니 푸른 들판에는 젖소들이 한가로히 풀을 뜯고 있었다. 그 너머 멀리 알프스 산속에 오래전 어느 백작의 개인소유였다는 웅장한 호호슈테로비쯔성(Burg Hochosterwitz)이 보였다.

그때가 6월 초순이어서 산 아래에는 여러가지 꽃이 만발하고 숲이 울창했지만 인근 게르리쩬(Gerlitzen 1911m)의 평평한 산 정상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어서 스키어들의 활강하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무지개빛 헹글라이딩이 날아 다니던 것도 형용할 수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관광지에 가지 않는 날은 일행들과 온종일 펜션에서 노닥거리면서 독서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정장차림으로 시내 펠트키르헨(Feldkirchen)으로 나가서 쇼핑도 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그 지방의 토속음식을 사먹기도 했다. 나는 정말 전형적인 독일식 휴가를 즐긴 셈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허허로웠다. 낯선 곳인데다가 언어가 안통해서인지 매사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어느날 산책길에서였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숲이 우거진 호숫가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산책로 주변은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어슴푸레했지만 공기는 더 없이 맑고 상쾌했다. 그때 문득 저만치에서 구렛나루가 얼굴을 반 쯤 뒤덮은 덩치가 큰 남자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손은 양쪽 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웃옷 쟈켓 한쪽이 불룩해보였다. 순간 며칠 전 TV 뉴스가 떠올랐다. 호젓한 산책로에서 의문의 총기사고가 났다,고 했다. 나는 오싹했다. 급히 숙소로 되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그에게 호기심을 자극할 것만 같아서 천천히 걸으면서 그의 동향을 주시했다. 그즈음 *네오나치즘도 활개를 치던 때여서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럴 때 독일어가 능숙하다면 내쪽에서 먼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넬 수도 있었을텐데 독일어를 못하니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차츰 내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내 발걸음은 뒤에서 뭔가 잡아당기는 듯이 쳐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내 옆에 서는가했더니, 이내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구텐탁!(Guten Tag)” 아침인사였다. 원 세상에! 내가 안도의 숨을 내쉴 사이도 없이 그는 웅얼거리듯 한마디 인사를 내뱉고는 오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잠시였지만 그를 의심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면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듯 서로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그후 나는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국내 여행을 갈 때조차도 미리 그지방에 관한 책을 구입해서 읽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그지방의 치안이나 문화, 풍습 등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수집해서 타지에서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네오나치즘(neo-Nazism)

신나치주의는 나치 독일과 나치즘의 부활을 추구하는 사상을 말한다. 나치즘의 특징인 극우, 민족주의 사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다. 네오나치즘(neo-Nazism)이라고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사상을 "신(新)국가사회주의"로 보곤한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