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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_ 혼자 가는 먼 집

책 읽는 경향(10)_ 허수경_ 혼자 가는 먼 집
글쓴이 이종률  2011-11-22 09:01:02, 조회 : 54

책 읽는 경향(10)_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 문학과지성


허수경은 진주 사람이다. 양반과 기생과 민란의 고장. 나와 동향이지만 나는 그녀를 알지 못한다. 팔십 년대, 그 흔하던 재야단체의 농성장에서라도 두어 번은 스쳤겠지만 그녀의 맨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내가 아는 것은 그녀의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1988)와 두 번째 시집「혼자 가는 먼 집」(1992)에서 풀어 놓은 넋두리가 전부다.

그녀의 목소리는 처연하다. “내 목젖이 꽃잎 열 듯 발개지던 그 시절(...)/ 나 어느 모퉁이에서 운다네/ 나 버려진 것 같아 나한테마저도...”(‘늙은 가수’ 중). 나는 그녀를 고향 오래비처럼 안아주고 싶었다. 돌곱창이라도 구워 따듯한 밥 한 끼 먹이고 싶었다. 그녀가 ‘온전히 미쳐 날뛰었던 날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승냥이 떼들과 싸우고 온 이녁들에게 방앗잎 듬뿍 넣은 고깃국을 끓여 먹이고 싶었듯이...

그녀가 ‘다정의 화냥’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관능은 “나 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기차는 간다’ 중)있음을 알만큼 농밀하지만 “아무려나 당신 마음의 나그네가/ 내 마음의 나그네를 어디/ 먼빛으로나마 바래줄 수 있으려구요”(‘연등 아래’ 중) 연민으로 체념한다.

그녀는 젊어서 이미 주모처럼 늙어버린 시인이다.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不醉不歸’ 중). 내밀한 생로병사의 연기법을 너무 일찍 누설한 죄다.

나중에 나는 그녀에게 화답하고 싶어졌다. “어제, 덧난 상처를 들여다보며 울었다/ 울다 지쳐 웃다가 다시 잠들었다/ 선생, 내 어디에서 그대의 이름을 마주할까/ 이즈러진 이념의 반달이 내 방 창호를 건너다본다/ 생각하면 우리 젊은 유희의 날들도 이미 저물었다/ 덧나지 않게 싸맨 상처도 언젠가 아물 것이다/ 붉은 흉터를 남기고 아물 것이다”(2003, 졸시 ‘선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