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절규
민순혜
지인인 그는 현직 외과 의사로 시인이며 사진작가이다.
그는 평상시 바쁘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따로 출사를 나가기보다는
사계절 구분 없이 매일 새벽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서서
일출 등 자연에서 느끼는 미세한 변화를 촬영하고 병원으로 출근한다.
주말이라도 각종 모임이 있는 날 외에야 비로소 대전 부근으로 나갈 수가 있는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그나마도 조심한다고 하더니
오늘 아침 그가 보내온 글이 너무나 애절하다.
사실 그와 같은 의료진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편안한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그에게 더욱더 고마울 뿐이다.
그가 보내온 아침 소식지 ;
꽃샘바람이 세차다.
너울대는 백목련 꽃나무가 그냥
지나가는 범선 같았다.
벚나무들이 줄지어 그냥
길 따라 어디로 가는 줄 알았다.
희붐한 봄볕에 시력이 그냥
흐릿해진 줄 알았다.
꽃잎들이 흙빛으로 후드둑 떨어져 발길에 밟혀서야
그제야 봄이 가는 줄 알았다.
빛이 빛 같지 않고 향이 향 같지 않은, 봄이
물 빠지듯 지나는 중이었다.
꿈이듯 창 넘어 풍경 보듯
무성영화 보듯 그냥 4월의 몇 날을 보냈다.
나와 상관없는 꽃과 풀들이 저만치
혼자 피어 있었다.
그냥 모조품같이 빛나는 객관적 상관물들이...
보름달이 코로나 같이 보여도
앵두의 달이 가고
목련의 달이 밝아왔다. _*<可 人>
벌써 4월이 지나가고 있다. 마치 음습하고 기나긴 동굴을 통과하듯이
오늘도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문득 지난 2018년 6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태국 유소년들이 동굴에 갇혔던 것이 떠올랐다.
그 당시 암흑의 긴 동굴로 생사를 판가름하기 어려웠지만, 모두가 노력한 결과로
단 한 명의 인명 피해 없이 모두 구조돼서 전 세계를 기쁘게 했던 일이어서다.
이번 <코로나-19>도 그들처럼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옛 생활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지인의 소식지를 받고 지금 그에게 그 어떤 말로 위로를 할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용기를 내어 詩 한편을 보내고 싶다.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可 人>
옥천중앙의원 송세헌 원장
외과 의사, 시인, 사진작가
시집 『굿모닝 찰리 채플린』
사진 전시회 < 대청호의 사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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