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11.전북문인대동제 개막축시 낭송
그 느티나무는
황금찬
내가 열세 살 그 무렵
우리는 함경북도 명천군
황진리에 살았다.
그곳은 어촌이어서
약 백의 80명이 어부들이요.
농부는 별로 없었다.
그 마을 산 밑쪽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
여름이면 그 나무 밑에
노인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며
장기를 놓았다.
간혹 아이들도 모여
새로 들은 동화나 동요를
부르기도 했다.
어느 날 노인들이
우리를 부르는 것이다.
너희들 언문 읽을 줄 아니?
압니다 했다.
그러면 이 책 좀 읽어보아라.
겉장에 그림이 많이들 그려져 있는
고담 책 몇 권을 우리들 앞에
내놓은 것이다.
그중 아무것이나 들고 몇 줄 읽었다.
잘 읽는구나
우리는 언문도 몰라
그러면 너희 세 사람은
각기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한 시간씩 책을 읽어라
그러면 돈 일 전씩 줄게 했다.
그때 노인들이 대충 내놓은 책은
고담소설, 조웅전 유충열전 현수문전
소대상전 황장군전 등이 있다.
그때 일 전이면
대포 연필 한 자루 값이다.
우리는 책 읽는 것을 여러 날 한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박 노인이 내게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려나” 하고
내게 묻는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더라.
내가 지나보니
어부는 그렇게 즐거운 직업인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더라.
너는 여기를 떠나라
도시에 가서 공부도 하고
그렇게 살아라
우리는 그 다음해
황진을 떠났다.
그것이 지금부터
약 80년 전의 일이다.
제비 건너온 바다 고요한 바다
이렇게 시작하는 동시
<봄바다>는
황진이 내게 준 슬픈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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