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은 본격적인 베네치아 관광에 나섰습니다. 많이 걸으려면 먼저 아침을 먹어야겠죠? 아침 식사는 원래 민박집에서 주는 걸로 알고 있었지만 있는 건 식빵뿐이고 그나마 알아서 먹으라는 분위기인 듯 싶어서(커피도 안 주고 말이죠) 우리는 밖에서 먹는 걸 선택했습니다. 카 도로 뒤쪽의 큰길인 스트라다 누오바에 있는 바에서 아침을 먹었는데 커다란 유리컵에 가득 주는 카페라떼와 이탈리아 사람들이 코르네토라고 부르는 크로아상이 아침이었어요.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메뉴로 아침 식사를 종종 했지만 살살 녹는 맛의 코르네토는 이 집이 최고였던 것 같아요.
바포레토에서 본 페스케리아Pescheria(어시장). 건물은 20세기 초의 것이지만 베네치아에는 14세기부터 이 자리에 어시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바포레토를 타러 갔습니다. 원래 계획은 산 조르조 마조레San Giorgio Maggiore까지 바포레토를 타고 갔다가 거슬러 올라오자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배를 타러 간 산 마르쿠올라 정류장에는 표시는 분명히 되어 있는데 1번만 설 뿐 산 조르조로 가는 2번은 오지를 않는 거였어요. 한참 기다린 후에야, 사람들에게 물어 본 끝에 2번은 오후 3시부터나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좀 황당하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냥 1번을 타고 살루테Salute에서 내리기로 했어요.
대운하를 지나는 곤돌라와 리알토 다리. 전에는 일본인이나 미국인들이 곤돌라를 많이 타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 보니 중국인들이 많이 타더군요.
베네치아의 바포레토는 다른 도시의 교통 수단에 비해서 상당히 비싸지만(한 번 타는데 6.5유로나 합니다), 그리고 걷는 것에 비해 많이 빠르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베네치아에 왔다면 일단 한 번쯤은 타고 카날 그란데를 죽 돌아보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배를 타고서만 볼 수 있는 운하의 풍경이 분명 있으니까요.
대운하의 르네상스 궁전 중 하나인 팔라초 바르바리고Palazzo Barbarigo. 그러나 전면을 덮은 화려한 모자이크로 르네상스다운 단아함은 별로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대부분은 사라진, 예전의 프레스코로 덮여 있던 팔라초들의 화려함이 어땠을지는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안에 자리도 있지만 관광객들은 밖에 서 있는 걸 좋아해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었어요. 구름이 잔뜩 낀 날씨가 좀 맘에 안 들었지만 카날 그란데를 미끄러지면서 보는 베네치아의 풍광은 역시 멋지더군요. 대개는 호텔이나 미술관, 박물관들로 쓰이는 다양한 양식의 팔라초들이 죽 늘어서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나란히 자리잡은 두 개의 바르바로 궁전들(Palazzi Barbaro). 왼쪽은 15세기에 고딕 스타일로, 오른쪽은 17세기에 바로크 스타일로 지어졌지만 소재의 통일성 때문인지 이질감 없이 어울립니다.
아름다운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유유자적한 속도로 흘러가는 배를 타고 양안의 경치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살루테 정류장에 도착해서 우리는 얼른 내렸습니다. 살루테는 다시 봐도 정말 아름다운 교회였어요. 지난번 왔을 때는 일부가 공사로 가려져 있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엔 그런 게 없어서 더 좋았습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은데도 위풍당당하고 바로크 교회답게 화려하지만 과도하지 않은 것이 정말 운하 입구를 지키는 건축물로서는 이 이상을 바랄 수 없을 정도지요. 내부 역시 충분히 바로크답지만 지나치게 번쩍거리거나 정신 없지 않고 단아한 분위기여서 좋아요.
자테레에서 본 주데카 섬. 가운데에 팔라디오Palladio의 일 레덴토레Il Redentore 교회가 보입니다.
교회 안까지 들여다 본 다음에 우리는 폰다멘타 자테레Fondamenta Zattere를 따라서 산책을 했습니다. 이 길은 운하가 바다 쪽으로 트여 있고 산 조르조 섬과 주데카Giudecca 섬이 건너다 보이기 때문에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어요. 이때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내리 쬐어서 날씨도 좋았구요. 지난번 베네치아에 왔을 때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보느라 이렇게 여유 있게 산책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건너편 섬들을 바라보거나 때때로 나타나는 좁은 운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돌아다닌 이 시간이 특히 즐겁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자테레를 따라서 걷다 보면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교회가 나오는데 우리는 이 중 제수아티Gesuati라고 보통 불리는 산타 마리아 델 로사리오Santa Maria del Rosario로 들어갔어요. 바로크 교회인 제수아티는 티에폴로의 천장화로 특히 유명합니다. 티에폴로 그림의 화사함은 언제나 매력적이지만 특히 천장화에서 그 매력이 배가되는 화가로 이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지만 그림의 크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좀 작았어요. 로마의 바로크 교회들에서처럼 실제 건축물과 구분이 안 되는, 압도적인 현란함은 없지만 스투코 틀 안에 계단과 신전, 천국으로 점점 높아지는 풍경을 만들어 아래에 있는 우리가 그 광경을 올려다보도록 만든 솜씨는 역시 티에폴로답죠. 그림의 제목은 ‘묵주의 증여’인데 가운데 후광을 두른 성인은 성 도메니코이고 구름 위의 성모로부터 받은 묵주를 신실한 자들에게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이름과 잘 어울리는 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수아티를 나와서는 날씨가 꽤 더웠기 때문에 젤라토를 사 먹고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기 위해 아카데미아 다리 쪽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보니 전면을 포장으로 막고 공사 중이더군요. 그래도 그쪽으로 가니까 한적한 자테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사람이 많았습니다. 나무 난간이 달린 아카데미아 다리는 살루테가 보이는 운하 위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그 위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죠. 그래서 다리 위도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아카데미아 다리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황갈색의 베네치아 고딕 스타일 건물은 학교인데 안뜰도 아주 예쁘더라구요. 예전 빗물을 받아 사용했던 뚜껑 달린 우물도 보이고 고딕식 창문과 잘 어울리는 꽃잎 장식이 있는 나무 문까지,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답니다. 나중에 찾아 보고서 이 건물이 팔라초 카발리 프란케티Palazzo Cavalli Franchetti라는 걸 알았어요.
진열장을 채운 파니니. 저는 오른쪽 위의 토마토와 모짜렐라, 루콜라가 들어간 걸로 골랐습니다.
우리는 캄포 산토 스테파노Campo Santo Stefano를 지나고 중간에 만난 바에서 점심으로 파니니를 샀습니다. 파니노는 이탈리아식 샌드위치로 안에 치즈, 토마토, 햄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고 주문을 하면 누르면서 구워주는 팬에 넣어서 따뜻하게 데워 줍니다. 우리는 산 마르코 광장에서 먹을 생각으로 포장해서 나왔죠. 산 마르코로 가는 도중에 팔라초 콘타리니 델 보볼로를 보러 갔는데 복잡하게 얽힌 아주 좁은 골목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나는 이 건물은 사실 우연히 만났다면 더욱 올라웠을 그런 건물이에요. 햇빛도 잘 들어올 것 같지 않은 좁고 허름한 골목길 사이에서 갑자기 등장한답니다.
외부 계단이 탑처럼 보이는 팔라초 콘타리니 델 보볼로
우리는 피아차 디 산 마르코의 회랑 계단 위에서 점심을 먹고-파니노는 꽤 커서 그거 하나 먹었더니 정말 배가 불렀어요- 광장 구경을 하기 전에 커피를 마시러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물로 갔습니다. 이곳은 민박집 주인이 가르쳐 준 곳인데 산 마르코에서 지척인 데다 살루테와 도가나Dogana-항구의 세관으로 쓰였던 건물인데 공사중입니다-그리고 산 조르조가 건너다 보이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는 걸 생각하면 싼 가격에 커피를 마시면서 쉴 수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인지 같이 있는 레스토랑에는 곤돌리에레들도 많이 와서 식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쉬다가 우리는 다시 산 마르코 광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비엔날레에서 보이는 팔라디오의 산 조르조 마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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