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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시,자작시,시낭송

미끼 외....


미끼

                                                                                                                

                황희순

 

   처음 만난 사람이 새끼손가락을 떼어갔다 다음 사람이 귀를 떼어갔다

다음은 입을 떼어갔다 눈을 떼어갔다 코를 떼어갔다 다음은 팔을 다리를

떼어갔다 잔머리 굴린다며 머리를 떼어갔다 그 다음 사람이 달걀귀신처

럼  둥그러진 여자를 버렸다 버려진 여자는 아무데나 굴러다니며 한자리

에 머물지 못했다 굴러다니다 만난 또 한 사람이 아직도 몸이 따뜻하다며

가슴을  열고 심장을 떼어갔다 이제 어디에 부려놓아도 깨질 일 없는 여자

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__《문학청춘》 2011. 가을.

 

 

 

<3>-물고기 강의실/강희안-

 


  그녀는 물속에 들어가 연신 뻐끔 담배를 피운다
  일조량과 산소량이 부족하다고 투덜대며
  불쑥불쑥 검은 물 밖으로 뛰쳐나올 태세다
  물밑 작업하던 강에는 문명이 시작되기 전인 듯
  검푸른 바벨의 언어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녀가 봉긋한 C컵 브래지어를 곧추세우며
  잠시 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살랑거린다
  ‘신’의 이름에서 ‘ㅅ’을 슬쩍 빠뜨린 그녀는
  저녁놀의 입술에 빨려든 빛의 나이트장에서
  날렵한 꼬리지느러미로 부킹을 시도하고 있다

 

  저마다의 라벨에 따라 조합된 물의 강의실
  거들을 입다가 그만 터져버린 부레가 나뒹군다
  힘센 물질로 파랑의 등고선을 그린 대가란
  바닥까지 샅샅이 들추어내는 무리를 자초한 일
  그녀는, 뻐끔뻐끔 붉은 혀를 말아올리며
  조만간 아벨의 문법에 맞춰 손사래를 치리라

 

  한밤내 난파된 물결 속을 돌아나와 보면
  꼬부라진 캔과 포크, 물고기의 낡은 비늘이
  그녀의 방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담배 연기에 그을은 벽에 신의 권세 대신
  바벨을 들어 올린 역사의 이름을 휘날려 써본다

 

  아침마다 성경책을 필사하던 그녀의 일과는
  팽팽한 브래지어 와이어의 압력에 따라
  밑 빠진 음모를 더듬어 보는 일로 바뀌었다
  교정 구석구석에는 물의 책을 찢고 나서야
  다시 문맹을 알리는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했다

 

 

 

울기 좋은 곳을 안다  / 이명수

 


울 만한 곳이 없어 울어보지 못한 적이 있나
울음도 나이테처럼 포개져 몸의 결이 되지
달빛 젖은 몸이 목숨을 빨아 당겨
관능으로 가득 부풀어 오르면
그녀는 감춰둔 울음의 성지를 순례하지
징개맹개 외배미들은 아시겠지
망해사 관음전에 마음 놓고 앉았다가
바다 끝이 뻘밭 지평선에 맞닿을 때
심포항 끼고 바삐 돌아 화포포구로 가지
갈대는 태어날 때부터 늙어 버려 이미 바람이고
노을이고 눈물이지
갯고랑이 물길을 여는 나문재 소금밭으로 가 봐
갯지렁이 몸을 밀면서 기어간 뻘밭의 자국들
그것이 고통스런 시 쓰기의 흔적처럼 남아 있을 때
뒤돌아 봐, 울음이 절로 날 거야
갯고랑처럼 깊이 파인 가슴 한쪽이 보이지
그래도 울음이 솟지 않거든 한번 더 뒤돌아 봐
녹슨 폐선 하나 몸을 누이다 뒤척이며 갈대숲 너머로 잠기고 있을 거야
거기 낡은 폐선 삐걱이는 갑판에 역광으로 꿇어앉아
울고 있는 여자 하나 보일 거야
깨진 유리창 틈으로 흔들림이 미세한
울음의 음파가 허공에 닿아
길 떠나는 도요새 무리들 울리고 있을 거야
울음도 감염되어 분열하고 성장해서
화포포구엔 울기 좋은 울음의 성지 오래된 소금창고가 남아 있는 거지
그곳 우주 가득한 관능을 빨아들이며
잠몰(潛沒)하고 있는 달빛 아래
바로 그녀가 울음의 찐드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