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 게시판

[문화산책] 사랑받아 행복한 날<세계일보>

 

[문화산책] 사랑받아 행복한 날<세계일보>

관련이슈 : 문화산책

 

 

겉치레 치우친 결혼 프러포즈 범람
영화 속 명장면… 방법보다 마음가짐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는 ‘서풍에 부치는 노래’에서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라는 말로 아름다운 희망을 이야기했다. 어느 새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시작됐다.

꽃과 햇살이 눈부신 5월은 결혼하기 좋은 달이다. 요즘은 결혼하기 전에 반드시 화려하고 개성 있는 프러포즈를 한다.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리기도 하고, 친구가 동원되기도 하고, 바쁜 예비신랑 대신 프러포즈를 준비해주는 이벤트 회사도 있다. 결혼 전 프러포즈가 마치 사랑의 양을 측정하는 저울이 된 듯해 씁쓸하다. 알맹이보다 겉치레만 중시 여기는 풍토가 오랜 추억으로 남을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인 프러포즈까지 침범한 느낌이다. 결코 과시용으로 요란스럽지 않고 소박하지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프러포즈야말로 많은 예비신부를 행복하게 해주는 가슴 설레는 선물이 아닐는지.

조연경 작가
많은 사람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을 영화에서 찾으며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느낀다. 영화 속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빛깔의 프러포즈가 존재한다. 영화 속 프러포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러브 액츄얼리’의 ‘스케치북 프러포즈’다. 크리스마스를 5주 앞두고 조심스레 사랑을 시작하는 10쌍의 연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로맨틱하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고 달콤쌉쌀하고 눈물겨운 사랑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그중 친구의 신부를 짝사랑하는 남자가 사랑의 고백을 적은 도화지를 한장 한장 넘기며 말없이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웅변이라도 남자 주인공의 침묵 속 고백을 못 따라갈 듯하다. 절절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 ‘빅피쉬’에서는 남자주인공 유언 맥그리거가 사랑하는 여자 앨리슨 로먼이 황금 수선화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미국 전역을 뒤져서 황금수선화를 구해와 앞마당을 가득 장식한다, 수선화가 바람에 흔들이는 모습이 마치 마음을 받아 달라는 간곡한 손짓 같기도 하다.

영화 ‘귀여운 여인’은 백만장자이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리처드 기어가 거리의 여자인 줄리아 로버츠를 사랑하게 된다. 줄리아 로버츠 역시 리처드 기어를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그의 곁을 떠난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통속성을 한 방에 부순 건 오픈 카를 타고 꽃다발을 흔들며 줄리아 로버츠의 낡고 초라한 집으로 달려가는 리처드 기어의 박력이다. 한손에 꽃을 들고 어렵게 철제 사다리를 올라가 프러포즈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탄성을 지른다. 고소공포증과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은 사랑의 위대함을 봤기 때문이다.

평범한 남자 주인공 휴 그랜트와 슈퍼 스타인 여자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의 사랑을 그린 영화 ‘노팅힐’은 서정적인 수채화 같은 작품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심남인 남자 주인공은 신분의 차이를 극복 못하고 돌아 선다. 하지만 영국을 떠나기 전 여주인공의 인터뷰 장면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간다. 사랑을 포기할 이유는 오직 사랑이 사라져 버렸을 때 뿐이라고 느낀 남자 주인공 휴 그랜트는 인터뷰 장소에서 공개 프러포즈를 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이렇듯 방법은 다양하지만 ‘진심’과 ‘용기’를 다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프러포즈하는가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는가가 중요한 건 말할 것도 없다. 흔히 무릎을 꿇고 장미다발이나 반지를 받치는 경우가 많은데 무릎만 꿇었지 상대방에게 가는 마음은 고개 숙여 겸손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인가.

조연경 작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