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유명해진 그 외국작가 소설도 '사재기'로…
한기호 "외국 작가를 한국에서 키운 출판사도 있어"도승철 "베스트셀러 중 절반은 사재기로 키운 책들" 한국일보 한국아이닷컴 김지현기자 입력 2013.05.09 15:49 수정 2013.05.09 16:05
5년 전 C(36ㆍ남)씨는 직장동료 K(39ㆍ남)씨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K씨는 "출판사에 다니는 지인의 부탁"이라면서 책 쇼핑몰인 A업체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소설책이 직장으로 배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C씨 말고도 수 명의 직장동료가 K씨에게 쇼핑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넘겼다. 이틀 후 K씨가 말한 대로 외국 작가가 쓴 소설책 한 권이 C씨와 동료들 앞으로 도착했다. 이 소설책은 곧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으며, 현재까지도 스테디셀러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의 책을 펴낸 출판사는 그 뒤로 해당 외국 작가가 쓴 책을 매년 발간해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사재기를 통해 말 그대로 '대박'을 낸 것이다.
출판사들은 왜 사재기를 하는 것일까. 물론 '돈'이 되기 때문이다. 출판계의 부끄러운 관행인 사재기에 대한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9일 SBS라디오 '한수진의 전망대'에서 "출판계에서 사재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관계자는 대놓고 미안하다고 하기도 한다. 외국 작가를 한국에서 키운 출판사도 있다. 한국 출판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책을 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유통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도승철 밝은미래 대표는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20위권 내 베스트셀러 중 사재기한 책이 절반은 된다"고 단언했다. 그는 "그 중에 50% 할인하는 도서는 자연 판매일 거고, 이를 제외하면 사재기 베스트셀러가 더 되지 않을까 의심이 된다"고 했다.
도 대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사재기 수법'의 실체도 밝혔다. 예컨대 인터넷에서 '월 9,000원을 내면 책 3, 4권을 보내주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봤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 신종 온라인업체들이 이러한 광고를 통해 회원을 확보, 다수의 ID를 만들어 온라인서점 등에서 책을 구매한다. 출판사는 일정 금액을 이 온라인업체에 지불하고 판매량을 확보해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에 가담한다.
출판사가 직접 비용을 투자해 책을 대량 구매한 후 '베스트셀러'가 되면 얻는 이익은 달콤하다. 도 대표는 "예를 들어 1일 300부 정도의 도서가 판매되려면 월 1억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일단 단기간인 2, 3개월을 투자하면 (이득이) 수십에서 수백 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최소한 몇 배는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도서를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출판사가 나서서 사재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 도 대표는 '베스트셀러 등극'이 매체를 통한 광고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본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1만원짜리 도서를 1억원어치 사재기하면 출판사가 1억원의 책을 판매한 셈이 되기 때문에 그 금액의 20~40%를 회수하게 된다. 광고비용은 그냥 지출하게 되는 비용이기 때문에 얘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출판계의 부끄러운 관행인 사재기를 솜방망이 처벌로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사재기가 적발되면 해당 출판사는 과태료 1,000만원에 처하고 3년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제외시키는 자율협약을 시행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한 소장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 책을 읽게 권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도서정가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도서정가제가 정착돼 동네 서점이 살아나도 독자들이 스스로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이러한 폐해를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아이닷컴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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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9일 SBS라디오 '한수진의 전망대'에서 "출판계에서 사재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관계자는 대놓고 미안하다고 하기도 한다. 외국 작가를 한국에서 키운 출판사도 있다. 한국 출판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책을 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유통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도승철 밝은미래 대표는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20위권 내 베스트셀러 중 사재기한 책이 절반은 된다"고 단언했다. 그는 "그 중에 50% 할인하는 도서는 자연 판매일 거고, 이를 제외하면 사재기 베스트셀러가 더 되지 않을까 의심이 된다"고 했다.
도 대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사재기 수법'의 실체도 밝혔다. 예컨대 인터넷에서 '월 9,000원을 내면 책 3, 4권을 보내주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봤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 신종 온라인업체들이 이러한 광고를 통해 회원을 확보, 다수의 ID를 만들어 온라인서점 등에서 책을 구매한다. 출판사는 일정 금액을 이 온라인업체에 지불하고 판매량을 확보해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에 가담한다.
출판사가 직접 비용을 투자해 책을 대량 구매한 후 '베스트셀러'가 되면 얻는 이익은 달콤하다. 도 대표는 "예를 들어 1일 300부 정도의 도서가 판매되려면 월 1억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일단 단기간인 2, 3개월을 투자하면 (이득이) 수십에서 수백 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최소한 몇 배는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도서를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출판사가 나서서 사재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 도 대표는 '베스트셀러 등극'이 매체를 통한 광고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본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1만원짜리 도서를 1억원어치 사재기하면 출판사가 1억원의 책을 판매한 셈이 되기 때문에 그 금액의 20~40%를 회수하게 된다. 광고비용은 그냥 지출하게 되는 비용이기 때문에 얘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출판계의 부끄러운 관행인 사재기를 솜방망이 처벌로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사재기가 적발되면 해당 출판사는 과태료 1,000만원에 처하고 3년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제외시키는 자율협약을 시행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한 소장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 책을 읽게 권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도서정가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도서정가제가 정착돼 동네 서점이 살아나도 독자들이 스스로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이러한 폐해를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아이닷컴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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