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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난의 파사드는 최후의 만찬을 시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무덤에 드는 과정까지를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조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총 13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이 조각들은 S자 형태로 전개된다. | 인간의 대퇴골을 닮은 기울어진 기둥들이 현관을 받치고 있는 수난의 파사드는 1954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고, 훗날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 i Sitjar(1927~)가 제작한 조각 작품들이 그곳을 장식하고 있다. 탄생의 파사드에 있는 사실적인 조각상들이 수난의 파사드로 넘어오면서 극히 단순화된 것은 수비라치의 작업 스타일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는 가우디 사망 60주년이 되는 1986년 6월 10일부터 이 작업을 시작했고, ‘십자가의 길’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장면들을 조각으로 구성해 놓았다.
수난의 파사드에 기록된 장면들은 S자형 동선을 따르면서 시간대별로 전개된다. 예수와 열두 제자가 함께했던 최후의 만찬에서 출발한 조각들은 유다의 키스, 베드로의 배반, 빌라도의 재판 등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가 무덤에 드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수비라치는 가우디가 남긴 스케치를 참고만 했을 뿐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수비라치와 가우디가 제작한 스케치를 비교해 보면 여러 부분에서 조각의 내용과 형식들이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의 위치가 변경된 것이다. 사실 수비라치는 가우디가 헌신했던 성가족 성당의 정신에 충실하고자 1년간 그의 작품을 연구했고, 그런 노력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심오한 상징물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의 발치에 있는 뱀과 마방진, 새벽닭과 미로와 독수리 등이 그것이다. 수비라치가 로마 병사들의 모습을 까사 밀라의 굴뚝에서 따온 것 또한 가우디에 대한 헌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수비라치가 예수의 얼굴이 찍힌 수건을 펼쳐 들고 있는 베로니카를 파사드 중앙에 배치한 것은, 그것이 골고다를 향한 고난의 행진 중에 일어났던 유일한 기적이기 때문이리라. 수비라치는 가장 드라마틱한 이 장면 왼편에 가우디를 등장시켜 그 효과를 한층 배가시키는데,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영원히 기억될 가우디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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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단 위쪽으로 있는 높은 채광구에서 밝은 빛이 내려오고 있다. 성당을 통틀어 가장 높은 예수의 탑은 제단 앞쪽, 복음사가들의 기둥 사이에 세워지게 된다. | 가장 높은 곳에 매달린 십자가의 예수는 마치 중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게를 상실한 채 공중에 떠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우디는 생전에 수난의 파사드에 대한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두드러지게 나타내려 한다는 이야기를 남겼는데, 상체가 앞으로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로운 모습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듯 보인다.
성가족 성당의 내부는 밖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의 놀라움을 간직한 곳이다. 하늘에 난무하는 성스러운 별들이 땅을 뚫고 자라난 기둥들과 이어지고, 그들 사이를 넘실대는 따스한 광선은 모든 이들의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빛의 축복은 가우디가 표현하고자 했던 신의 은총이었다.
미사를 볼 수 있는 거대한 예배당이 그나마 구색을 갖춘 것은 최초의 공사가 시작되고 무려 127년이 지난 2010년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친히 성가족 성당을 방문하여 축복의 미사를 집전하게 된다. 당시 교황은 깊은 신앙심으로 성당 건립에 이바지했던 예술가를 거론하며 “안또니 가우디 이 꼬르네트는 참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건축 예술과 신앙의 놀라운 합일체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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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복음사가에게 헌정된 보랏빛 기둥. 이 기둥들 위에는 성당에서 가장 높은 예수의 탑이 들어서게 되며 그 높이는 무려 170미터에 이른다. | 수난의 파사드로 난 입구를 통해 성당 내부로 들어오면 머리 위로 마리아상이 있고, 건너편 탄생의 파사드 쪽에는 요셉의 조각상이 있다. 천장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기둥들은 마치 나무가 가지를 뻗듯이 하나의 뿌리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형태이며 천장의 장식은 하늘의 별을 떠올리게 한다. 성당을 거닐다 보면 사랑의 문들이 마주 보는 중간 지점에서 다른 것과 확연히 구분되는 보랏빛 기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네 명의 복음사가 ‘마르코’, ‘루카’, ‘요한’, ‘마태오’에게 헌정된 기둥으로, 그들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진 타원의 조명등이 기둥 중간쯤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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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개에 매달린 십자가 상. 가우디는 이 조각의 가장 이상적인 자세를 찾아내기 위해, 모델 주변에 거울을 설치하고 사진을 찍어 실제 작업에 참고하였다. | 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 위에는 닫집 형태의 천개가 있고 그 중앙에 예수의 십자가 상이 매달려 있다. 천개를 장식한 밀과 포도송이는 예수의 몸과 피를 나타내는데, 가우디는 마요르까 빨마 대성당에서도 이와 흡사한 형식의 천개를 설치한 바 있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나타낼 영광의 파사드는 인간을 위한 신의 약속을 조금씩 드러내며 지금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가우디 사후 3년이 되는 1929년에 최종적으로 확정된 도면에 따르면 이곳에는 성경에 기록된 영광의 말씀들이 돌로 조각된 나무와 구름 위에 각인되고, 지옥과 연옥을 포함한 인간의 일곱 가지 죄악과 일곱 가지 선행은 마요르카 거리에서 시작되는 지하 계단에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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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놓인 산 조르디 조각상은 영광의 파사드로 통하는 출입구 위에 있으며, 수난의 파사드를 담당했던 수비라치의 작품이다. |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이 중세의 방식처럼 인간의 손에 의해서만 천천히 진행되길 바랐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에 묻혀 버렸다. 어느새 성당의 모든 작업은 인간보다 정확한 기계들에 의존하게 되었고, 분야별로 최적화된 시스템은 생각보다 빨리 공사를 끝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래도 이 성전이 과연 사람들의 바람처럼 2026년에 완공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성가족 성당을 통틀어 가장 화려하게 장식될 영광의 파사드가 완성되는 날, 비로소 모든 종탑들이 일제히 그의 이름을 부르며 깊이 잠들어 있던 가우디의 영혼을 깨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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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대 | ※김용대는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지금까지 고향에 살고 있다. 본래 미술을 전공하여 2007년부터 드로잉에 관한 책들을 써 왔고, 근래에는 여행을 하면서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모아 책을 꾸며 가고 있다. 저서로는 [와우 드로잉], [퍼펙트 드로잉], [소묘 마스터], [고수의 길 1,2,3] 등의 실기 서적이 있으며, 여행을 기초로 써 내려간 [인도 이야기], [스페인 이야기], [인상파를 말한다-클로드 모네] 등의 수필집이 있다. 최근에는 [와우드로잉]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人民邮电出版社에서 출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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