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안내견과 함께 등장 때 술렁이던 교실.. 시각장애 교사 윤서향씨, 일반 중학교 교단 처음 서던 날
국민일보 입력 2014.03.05 03:32
봄 햇살이 교정 곳곳에 스며든 4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삼선중학교 1학년 1반 교실. 이 학교에 정교사로 발령된 시각장애인 윤서향(23·여) 교사가 안내견 '루시'와 함께 들어서자 술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시선은 일제히 윤 교사와 루시에게 쏠렸다.
"She is my best friend. Do you know her name?(이 여자애는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이름이 뭔지 아니?)"
윤 교사가 첫 질문을 던지자 웅성이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한 학생이 "She? That dog is she?(여자라고요? 그 강아지 암컷이에요?)"라고 묻자 윤 교사는 "Yes, she. Her name is Lucy.(그래 암컷 맞아. 이름은 루시야)"라고 답했다. 곳곳에서 "아∼" 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어 윤 교사가 꺼내든 건 영어교과서가 아닌 점자단말기였다. 윤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 명씩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얼굴을 볼 수 없는 그가 학생들을 기억하고 식별하는 방법은 목소리다. 1번부터 34번까지 아이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윤 교사는 익숙하게 점자단말기로 학생들의 이름과 특징, 장래 희망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 점자문서는 1학년 1반의 출석부로 쓰인다.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윤 교사(시각장애 1급)는 지난달 숙명여대 교육학부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입학 때도 장애인 특별전형이 아닌 일반 정시전형에 응시해 합격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비장애인과 똑같을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주고 싶어 특수학교 대신 일반 학교 교사의 꿈을 키워왔다. 졸업과 동시에 서울 지역 중등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마침내 이날 교단에 섰다.
윤 교사는 학생들이 자기소개를 마칠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배드민턴 선수, 예능 MC, 대학교수 등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라'는 말이 있지? 꿈은 크게 갖는 거야"라고 격려했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루시는 몇 살이에요?" "배변 처리는 어떻게 하세요?"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 학생이 "선생님 눈은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라고 물었다. 순간 침묵이 흘렀지만 윤 교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선생님은 성격이 급해서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왔어. 기억은 안 나지만 곧바로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눈이 안 보였대. 그래도 영어가 정말 재밌어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거든. 그래서 너희 앞에 서 있는 거야. 너희도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수업의 마지막은 윤 교사가 준비해온 라디오 광고를 듣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태양은 빛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바다는 모험을 멈추지 않는다. 최고는 멈추지 않기에 위대한 것이다.' 윤 교사는 "이 광고 문구처럼 실제로 해낸 사람이 이번 소치올림픽에 출전했던 이상화 선수야. 너희도 이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며 수업을 마쳤다.
수업이 끝난 뒤 이예찬(13)군은 "수업 시작 전엔 (선생님이 시각장애인인 줄) 몰랐는데 대단한 분 같다"며 "존경스럽고 더 열심히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윤 교사는 일반 교과서 대신 점자로 변환된 교과서로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윤 교사를 지원해온 한 복지단체가 교과서를 점자로 바꿔 윤 교사에게 보내주는 점자 교과서다. 교과서 텍스트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말하기와 듣기를 강조하는 영어교육을 시도해 볼 계획이다. 윤 교사는 "언제나 아이들로부터 '오늘 수업 정말 재밌었다'는 말을 듣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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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윤 교사(시각장애 1급)는 지난달 숙명여대 교육학부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입학 때도 장애인 특별전형이 아닌 일반 정시전형에 응시해 합격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비장애인과 똑같을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주고 싶어 특수학교 대신 일반 학교 교사의 꿈을 키워왔다. 졸업과 동시에 서울 지역 중등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마침내 이날 교단에 섰다.
윤 교사는 학생들이 자기소개를 마칠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배드민턴 선수, 예능 MC, 대학교수 등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라'는 말이 있지? 꿈은 크게 갖는 거야"라고 격려했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루시는 몇 살이에요?" "배변 처리는 어떻게 하세요?"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 학생이 "선생님 눈은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라고 물었다. 순간 침묵이 흘렀지만 윤 교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선생님은 성격이 급해서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왔어. 기억은 안 나지만 곧바로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눈이 안 보였대. 그래도 영어가 정말 재밌어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거든. 그래서 너희 앞에 서 있는 거야. 너희도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수업의 마지막은 윤 교사가 준비해온 라디오 광고를 듣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태양은 빛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바다는 모험을 멈추지 않는다. 최고는 멈추지 않기에 위대한 것이다.' 윤 교사는 "이 광고 문구처럼 실제로 해낸 사람이 이번 소치올림픽에 출전했던 이상화 선수야. 너희도 이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며 수업을 마쳤다.
수업이 끝난 뒤 이예찬(13)군은 "수업 시작 전엔 (선생님이 시각장애인인 줄) 몰랐는데 대단한 분 같다"며 "존경스럽고 더 열심히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윤 교사는 일반 교과서 대신 점자로 변환된 교과서로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윤 교사를 지원해온 한 복지단체가 교과서를 점자로 바꿔 윤 교사에게 보내주는 점자 교과서다. 교과서 텍스트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말하기와 듣기를 강조하는 영어교육을 시도해 볼 계획이다. 윤 교사는 "언제나 아이들로부터 '오늘 수업 정말 재밌었다'는 말을 듣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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