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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기사,문학관련

[스크랩] 소설 `빙점`을 읽고

 

'빙점'의 순간,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

 

 

 

무거운 주제인데 너무 재밌었다. 우리에겐 싫은데도 내면을 볼 기회가 늘 주어진다. 꼭 죄 없는 삶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글자로 적으려니 민망하지만 솔직하자면 끝도 없다. 깊은 곳에 꽁꽁 숨겨진 무섭고, 자극적이고, 부끄러운, 분노와 욕망들.. 이번에 독서 후기클럽에서 주신 엄청 두꺼운 책의 표지는 이렇게 말한다.

'선하게 살고자 애쓸수록 그럴 수 없다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에게는 나면서부터 죄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의 주제는 '원죄'이다. 기독교가 거의 없는 일본의 소설가가 원죄를 다뤘고, 일단 문단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고민은 전 세계적으로 예외가 아닌 거겠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너는 죄인이다' 가 아닌, 등장인물들 스스로가 자신의 죄성과 나약함에 직면하는 과정이 속속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빙점이 유명해진 게 아닐까?

 

이 소설은 한 가족에게 일어나 다소 황당한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잘나가는 병원장 게이조의 아내인 나쓰에는 그녀를 사모하는 부원장과 잠시 대화하기 위해 딸을 내보냈는데, 3살 된 어린 딸은 납치를 당해 살해를 당한다. 게이조는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확신하며 제어할 수 없는 질투에 휩싸였다. 딸을 죽인 책임이 바람난 아내에게 있다고 믿은 그는 복수하기 위해 친딸을 살해한 살인범의 딸을 입양하여 키우게 한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기절제적인 주인공이 자신의 아내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 또한 살인범의 딸을 키우는 고통을 감수하려 하는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이 죄의식들이 자신을 압도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한편 부모와 닮지 않는 아기였지만 행복하게 키우던 나쓰에는 우연히 게이조가 자신의 번뇌를 적은 글을 통해 요코가 살인범의 딸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나쓰에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감추고 요코를 구박하며 남편을 증오한다. 작가는 서로를 속고 속이는 한 가정의 관계를 책 곳곳에서 꼬이고 꼬인, 엇갈린 심리전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나는 10대 후반의 성숙해가는 요코에게 성적 충동을 느끼는 아빠가 되었다가, 요코를 사랑하게 된 오빠가 되었다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6살의 요코의 목을 졸라버린 엄마로 몰입되기도 했다, 특히 아무리 친딸이 아니라지만, 자라나는 요코를 젊은 여자로 인식하며 질투하는 미모의 엄마 나쓰에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철없게 느껴지면서도 솔직히 공감이 갔다. 여자란 특이한 생명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딸을 여자로서까지 경쟁의식을 느끼며 못마땅해 하던 나쓰에는 아들의 친구인 건장한 청년이 요코에게 고백하자, 요코가 잘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요코의 정체를 폭로하고 만다. 내겐 얄미울 정도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긍정적이고 독립심이 강한 요코가 자기 죄의 깊이에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요코는 초

 

등학교 때부터 바르고 곧게 생각하며 상처받지 않았다.

이 아이는 자기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산다면 환경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던 이 부분이 발가벗긴 듯이 드러나자 요코는 '제 속에서 한 방울의 악도 발견하고 싶지 않았던 건방진 저는 죄 많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참고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라고 아주 정직한 유언을 남기고 자살을 택하고 만다. 나쁜 것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할수록, 자기에겐 없을 것이라 믿었던 죄의식이 더 강하게 짓누름을 발견하는 것으로 빙점은 역설적인 마무리를 한다.

 

 

저자 미우라 아야코

 

나는 그 동안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사실 비약된 캐릭터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빙점의 등장인물들은 묘하게 공감이 갔다. 나는 단순한 편이라 요코 같이 스스로 완전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본성의 깊은 고민 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내적싸움을 하고 있는 친구를 보아왔다. 그 친구와 몇 년간 얘기하면서 성찰은 산속의 스님들의 것만은 아니며, 사람으로서 인생을 사는 동안 각 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될 인생의 순간들이 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빙점의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인간은 각자의 분량만큼 생각하고 깨닫게 될 텐데, 묘하게도 그것의 기준치가 자신이 지은 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는 점이 재밌다. 인간은 이 빙점의 순간을 어떻게 맞딱뜨리게 되며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가? 게이조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문제 삼고 괴로워했지만, 요코는 죄의 근본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나쓰에는, 복수심으로 부원장과의 바람을 바라고, 요코를 미워하는 전혀 자신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며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급급하다. 전혀 깨닫지 못하는 나쓰에같은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 죄를 지은만큼 죄의식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저자는 죄의식에 관한 인간의 다양성 또한 담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죄를 인정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자신의 악함, 약함 다 알지만 대놓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빙점을 통해 많은 일본인들이,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그간 생각해 보지 않은(어쩌면 무의식적으로 피하던) 깊이 뿌리 내린 죄의식에 대해 돌아보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은 게이조처럼 잘못을 저질렀던 순간 시작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건들로부터, 요코처럼 순간 느끼게 된 수치심, 자기 연민, 자기 신뢰가 무너짐 등등의 감정들까지.. 다양한 인간들의 원죄가 수면위에 떠오르도록 했을 것이다. 그리고 빙점은 질문을 남긴 것 같다. 우리가 어는점을 발견했을 때, 누가 이 원죄를 다뤄 줄 것인가?

 

 

최지은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출처 : 文學道
글쓴이 : 김 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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