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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석지영]“하지만 학교가 우선이다”

기사입력 2011-12-27 03:00:00 기사수정 2011-12-2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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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영 하버드대 법대 교수

발레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나는 조지 발란신에게 매혹됐다. 러시아 출신의 무용가 겸 안무가 발란신은 네오클래식하고 모던한 발레 안무에 천재적이었다. 20세기 미국 문화에 한 획을 그었던 링컨 커스틴에 대한 기억도 있다. 1930년대 하버드대 재학 시절부터 미국 발레단 창설을 꿈꿨던 커스틴은 1933년 유럽에 있던 발란신을 초청했다. 발란신은 발레단을 창설하려는 커스틴의 계획에 찬성했지만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학교가 우선이다.” 그래서 이듬해인 1934년 미국 최초의 발레학교인 아메리칸발레학교가 문을 열게 됐다. 그리고 1986년 나는 그 학교 학생이 됐다.

발란신이 미국에서 처음 만든 ‘세레나데’는 아메리칸발레학교 학생들을 위한 작품이었다. 학생들을 훈육해 무용수로 키워낸 학교는 클래식 발레 기술과 전통을 현대적으로 조화시킨 부속 발레단의 토대가 됐다. 무용수를 배출하는 교육 방식은 혁신적인 일이었다.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기술적 예술적으로 향상시켜 내가 아는 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유산의 하나로 발레단을 키워낸 것이다.

“학교가 우선이다.” 난 그 말의 의미를 믿는다. 학교는 전통을 잇고 변화를 추구하는 제도적 기관으로서 사람들의 삶을 형성시킨다. 몸과 마음, 도덕과 미, 기술과 혁신적 도약, 지적 행위와 사회적 관습의 모든 총체로서 말이다. 학교는 사회적 관습과 규범, 염원의 근간이다.

학교는 전통 잇고 변화 추구하는 기관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젊은이들에게 사고의 기쁨과 매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즐겁다. 미국 법학 교육의 발원이었고, 내게도 법률 마인드를 심어준 바로 그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법률의 중요성과 법치의 중대함을 고취하는 일이다. 하버드 로스쿨의 로스코 파운드 전 학장은 “법은 안정적이어야 하지만 정체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고의 진화를 꾀하고 미래를 담보할 혁신가와 법적 안정성을 지켜낼 지도자를 함께 배출해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점을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절감하곤 한다.

법학 교수가 무언가를 가르친다면 그건 책에 있는 그대로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고의 방식, 기본 원칙에 의문을 갖고 추론하는 습관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의대생이 시체 해부를 통해 신체기관을 배우듯 법대생들도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권력과 권한, 정당성 등의 가치구조를 해체해 보도록 교육받는다. 이것이 민주주의에서 법률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기저다.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고, 의견 차이로 대립하고, 의구심을 갖고, 토론하고 재검토하는 일련의 과정은 수업에서 시작된다. 사례 연구는 19세기 하버드 로스쿨의 초대 학장이었던 크리스토퍼 랑델 교수가 창안한 교수법으로, 하버드 로스쿨의 유명한 소크라테스식 강의법에 잘 들어맞는다. 소크라테스식 강의에서 교수는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실제 사례들을 깨우치게 한다. 사실과 원칙 사이의 관련성을 살피고, 사례를 추론하고 비평하며, 구체적인 사건들에 법률을 대입해 본다. 소크라테스식 강의는 소크라테스 문답법과 마찬가지로 교수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거기엔 정답도 결론도 없다. 추상적인 진실에 다가가는 것과는 다르다. 보다 제한적이고 실제적이고 보다 논쟁적이다. 영국의 법학자 에드워드 쿡 경이 주창했던 ‘법 이성(理性)’에 대한 연구다. 그것은 순수 이성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 판례와 관습에 따르며, 실제 발생되는 결과에 대한 판단의 문제다.

법학 교육은 ‘무엇’보다 ‘어떻게’를 가르치는 데 그 실체가 있다. 정답이 주어지지 않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가르친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기계적으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할 법 제도를 맡게 될 사람이다. 그들은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기술적 차원을 넘어 법 제도의 영향에 대해 이론적 작용과 이론이 현실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등을 보다 넓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범세계적 기여에 교육적 가치 있어

로스쿨은 법치주의 사회의 한가운데 있다. 학교에서의 교습 과정은 우리 사회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현재 하버드 로스쿨 학장을 맡고 있는 마사 미노 교수는 환영사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러분을 찾아 세상을 헤맸습니다.” 오늘날의 가장 중요한 교육적 가치 중 하나는 범세계적인 기여에 있다. 학교가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혜롭고 자비로운 법률가를 키워내는 것이다. 오직 학생들만이 그런 학교의 목표를 달성하게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내게 영광스러운 일이다.

석지영 하버드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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