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관계
민순혜
DP점에서 사진을 찾아서 나오는데 등 뒤로 주인 부부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그들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남자가 흠칫 뒤돌아보며 묻는다. “왜요? 뭐, 더 인화할 거 있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나는 얼버무리듯 대답하곤 엉거주춤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의 무심한 듯한 표정이 오히려 거슬렸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그런 표정을 짓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언짢았다. 그런 날은 종일 기분이 나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부부와 그렇게 된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기는 했다. 그러나 내가 홧김에 조금 불손했다손 치더라도 손님인 나에게 매번 그런 식으로 대한다면 그들에게도 문제는 있지 않나 싶다.
그곳을 알게 된 것은 디지털 사진을 인화했을 때부터였으니까 한 5년 전 쯤일 게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필름 사진인화를 위해서는 단골 DP점으로 다녔었다. 그러나, 디지털 사진은 마땅히 맡길 곳을 찾지 못해서 고심하던 중 우연하게 그곳을 알게 되어서 여간 기쁜 게 아니었다. 더욱이 그곳은 색상이나 인화지가 나의 취향에 딱 맞는 곳이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였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찍어 준 사진을 플로피 디스켓이나 CD에 저장해서 인화하던 터여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곧바로 시내에 위치한 그곳으로 달려갔다. 주인 여자가 나왔다. 나는 카메라를 통째로 내밀면서 말했다. “이거, 한 장씩 뽑아주세요.” 그런데 주인 여자는 의외로 냉담하게 대답했다. “그거, 메모리 카드만 꺼내주세요.” 라고. 나는 난감했다. 무슨 기기든 다루는데는 익숙지 않은 데다가 메모리 카드가 뭔지도 몰라서였다. 나는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메모리 카드가 뭔데요?”
“사진기 아래에 보면 작은 거 보여요. 그거 꺼내서 주시면 돼요.”
나는 그녀가 말한 대로 디지털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메모리 카드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에 있는 지 찾을 수가 없네요… 아주머니가 좀 해주세요… 다른 곳에서는 다 해주던데요.” 며칠 전 친구가 사진인화를 맡기러 갔을 때 그곳 주인이 척 받아서 해주던 게 생각나서였다. 그러나 주인 여자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거기, 아래 잘 찾아보시면 있어요.”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
“아이참, 짜증 나네요…”
그때였다. 내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안쪽에서 포토샵 작업을 하고 있던 주인 남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다가왔다.
“아니, 손님! 짜증이 나다니요! 그건 손님이 해야 하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주인 남자도 못마땅해서 언성을 높였다.
“아저씨, 손님이 메모리 카드가 뭔지 몰라서 좀 꺼내달라는데 주인이 그것도 못해줍니까?”
그 부부와 그렇게 언쟁이 오고간 것이다. 잠깐이었지만 언성을 높이면서 다투다시피 했던 터여서 그 당시는 사진이고 뭐고 간에 다 그만두고 당장 그곳을 나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근처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을 생각하곤 어쩔 수없이 꾹 참고 기다렸다가 사진을 찾아가지고 나오는데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처음의 그 기분이 계속 연장되고 있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그토록 오래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보다 더한 일도 참고 견뎌야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말이다. 나는 어쩌면 손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은연 중에 그들에게 무조건 이해를 바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찍는 걸 특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곳과의 불협화음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매번 느끼면서도 이처럼 마음을 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오만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높고 청명해지는 이 가을엔 내 마음도 좀 더 넓어지고 넉넉해졌으면 좋겠다.
─『시에』 2011년 겨울호
민순혜
대전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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