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선지에 여행 아이콘을 그린다
민순혜
그는 어제 출국했다. 여름휴가 차 한 달간 유럽으로 배낭여행이다. 시계를 보니 첫 도착지 프랑크푸르트에 있을 시간이다. 아마 지금쯤은 도로 옆 마켓에 들러 도중에 마실 음료수랑 캔맥주 등 그가 좋아하는 약간의 간식을 사고 있을 게다. 당일 차를 렌트해서 곧바로 아우토반을 달려 오스트리아로 간다고 했다. 음악도시 빈(Wien)을 제일 먼저 방문한다고 했던 거 같다.
그는 작곡가이지만 주말을 이용해서 자주 여행한다. 비전문인인 나와는 음악동호회 회원으로 알게 되었지만 여행코드가 맞아선지 자주 소그룹으로 여행을 같이했다. 여름과 겨울 휴가철에는 동호회 가족 모두 국내 한적한 해변이나 숲을 수소문해서 단합대회 겸 여행을 갔다. 그러나 그는 소아마비 중증 장애인으로 목발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뗄 수 없기에 여행할 때는 항상 조심스러웠다. 작년 여름 무창포해수욕장에서였다. 순식간에 밀려온 세찬 파도에 휩쓸려 그가 바닷물 속으로 내팽겨쳐졌다. 허리 정도 깊이였는데도 허우적대다가 다시 파도에 떠밀려 더 깊이 떠밀려갔다.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다행히 인명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어 큰 상처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그가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한다고 말할 때는 농담인 줄만 알았다.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 야외 캠핑장에서 숙식하며 장시간 운전하고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락이라도 받아야 될 것처럼 떼를 쓰 듯이 면밀하게 짜여진 여행계획서를 눈앞에 들이댈 때는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요, 한번 해 보는 거에요!”
사실 여행사 패키지상품으로 가면 편할 것을 굳이 배낭여행을 가는 것부터 그는 좀 특별했던 거 같다. 어쩌면 그는 인정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에 살면서도 삭막하기만 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일행들과 다정하고 행복한 일상을 취해보고 싶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일행들과 잦은 만남도 그에게는 엄청난 흥미거리였으니까. 그는 국내에서 여행을 가도 식사준비는 도맡아서 했다. 정상인인 우리가 미안해하기라도 하면 옆에 있던 그의 아내는 도리어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애 아빠는 집에서는 전혀 안 해요! 그러니까 여행 와서라도 해야해요!” 그는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장기간 해외 배낭여행은 처음이기에 그도 준비하는데 예상보다 걸림돌이 많았다고 한다. 항공권 예약 등 필수 항목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먼저 한 달간 긴 여행에 동행할 파트너를 구해야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했다. 장애인인 그는 무거운 짐을 들거나 옮기는 건 부자연스럽기에 일행의 배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력도 틈틈이 체크해야만 했다. 동행은 수소문 끝에 한 달 전에야 겨우 8명 다 구했고, 이젠 여행준비 끝이라고 그 답지 않게 호들갑스런 전화가 걸려왔다. 그 후 한 달여 동안은 소식이 전무했다. 틈만 나면 서로 연락해서 여행계획을 수정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했다.
지난주 해외여행에 필요한 멀티플러그, 모바일 프로젝트, 소형 디지털 카메라, 랜턴 등… 몇 가지를 빌려주는데 그의 상기된 모습을 보니 여행이란 정말 생각만으로도 무한한 에너지를 솟구치게 하는 거 같았다. 이번에도 캠핑장 가는 곳곳마다 그의 요리솜씨가 발휘될 거다. 그는 여행하면서 악보를 쓴다. 그의 오선지에는 무수한 아이콘이 있다.
오늘밤 오스트리아 빈 어느 캠핑장에서 그는 또 오선지에 감성 음표를 그려 넣고 있을 게다. 그가 본 유럽의 도시, 알프스 산,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호수, 푸른 들… 오고 가면서 만나는 낯선 사람과의 우정은 쉼표로 표시 되겠지.
민순혜
대전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시에』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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