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로시인 김광규·이가림, 식지 않는 창작열
- 한윤정 기자
입력 : 2011-03-27 21:14:54ㅣ수정 : 2011-03-27 21:14:55
ㆍ‘하루 또 하루’ 김광규 “헌 신발끈 다시 조여매”
ㆍ‘바람개비별’ 이가림 “언어의 탄환 절제해 쏴”
원로시인 김광규씨와 이가림씨가 나란히 시집을 발표했다.
김광규 시인(한양대 명예교수)의 <하루 또 하루>(문학과지성사)는 생활세계 속의 실체험을 바탕으로 일상시의 영역을 꾸준히 개척해온 김 시인의 특징이 그대로 우러나는 시집이다. 올해 만 70세가 된 그는 “헌 신발끈을 다시 조여매며 새로 떠나야 할 시점”이라고 각오를 다진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인상,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에 대한 반성,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고, 별세한 지인들에게 보내는 추모의 내용 등이 들어있다.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덕분에/ 밀린 글쓰기에 한동안 골몰하다가/ 무슨 기척이 있어/ 밖으로 눈을 돌리니/ 밤하늘에 높이 떠오른/ 보름달이 창 안을 들여다본다/ 모두들 떠나가고/ 나 홀로 집에 남았지만/ 혼자는 아닌 셈이다’(‘나홀로 집에’ 부분)라는 시는 자연을 들여다보는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자연이 되어 삶과 눈을 맞추는 자세를 취한다.
‘소형 임대아파트 주민들이/드나들지 못하도록/오고 가지 못하도록/주상복합 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이/통로를 막고/길에 철조망을 쳤다’(‘나뉨’ 부분)는 안타까운 고발도 있다. 평론가 김태환씨는 “약한 존재들에게 바쳐진 시. 약한 존재가 시인을 구원한다”고 평했다.
한편 이가림 시인(68·인하대 명예교수)은 <바람개비별>(시와시학)을 내면서 “진실의 과녁을 정확히 꿰뚫기 위해 언어의 탄환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려고 아무것에나 쉽사리 방아쇠를 당
기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모더니즘 시풍, 중년기의 참여적 현실주의 경향을 넘어서 “선적 직관이 황홀한 이미지로 승화된 형태를 보여준다”(평론가 이숭원)는 평가다.
‘이제/ 내 비소 같은 그리움을/ 천년 종이에 싸/ 빈 술병에 넣어/ 달빛 인광 무수히 떠내려가는/달래강에 멀리 던진다// 먼 훗날/ 부질없이 강가를 서성이는 이 있어/ 이 병을 건져 올릴지라도/그때엔 벌써/ 글자들이 물에 씻겨/사라져 버렸을 것을 믿는다//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이야말로/영원히 숨 쉬는 것’(‘투병통신·1’ 부분) 등의 구절이 이런 평가에 걸맞는다.
자신의 몸을 ‘육십 년도 더 넘게 끌고 온/ 꿰매고 기운 헝겊 투성이의/ 내 슬픈 부대자루’(‘귀가, 내 가장 먼 여행·2’ 부분)에 비유한 부분을 놓고 평론가 장경렬씨는 “삶에 대한 애정과 연민에도 불구하고 무겁지 않음이 더할 수 없는 의미의 무게를 드리운다”고 매김했다.
한편 이가림 시인(68·인하대 명예교수)은 <바람개비별>(시와시학)을 내면서 “진실의 과녁을 정확히 꿰뚫기 위해 언어의 탄환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려고 아무것에나 쉽사리 방아쇠를 당
김광규(왼쪽)·이가림
‘이제/ 내 비소 같은 그리움을/ 천년 종이에 싸/ 빈 술병에 넣어/ 달빛 인광 무수히 떠내려가는/달래강에 멀리 던진다// 먼 훗날/ 부질없이 강가를 서성이는 이 있어/ 이 병을 건져 올릴지라도/그때엔 벌써/ 글자들이 물에 씻겨/사라져 버렸을 것을 믿는다//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이야말로/영원히 숨 쉬는 것’(‘투병통신·1’ 부분) 등의 구절이 이런 평가에 걸맞는다.
자신의 몸을 ‘육십 년도 더 넘게 끌고 온/ 꿰매고 기운 헝겊 투성이의/ 내 슬픈 부대자루’(‘귀가, 내 가장 먼 여행·2’ 부분)에 비유한 부분을 놓고 평론가 장경렬씨는 “삶에 대한 애정과 연민에도 불구하고 무겁지 않음이 더할 수 없는 의미의 무게를 드리운다”고 매김했다.
▲ 교대역에서
김광규
3호선 교대역에서 2호선 전철을
갈아타려면 환승객들 북적대는 지하
통행로와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내려야 한다 바로 그 와중에서
그와 마주쳤다 반세기 만이었다
머리만 세었을 뿐 얼굴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 바쁜 길이라 잠깐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와 나는 모두
서울에 살고 있지만
김광규
3호선 교대역에서 2호선 전철을
갈아타려면 환승객들 북적대는 지하
통행로와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내려야 한다 바로 그 와중에서
그와 마주쳤다 반세기 만이었다
머리만 세었을 뿐 얼굴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 바쁜 길이라 잠깐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와 나는 모두
서울에 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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