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시간드는 취미는 사치" 인식… '나홀로 취향'에 자족
- 한국일보
- 입력 2012.01.05 02:37
- 수정 2012.01.05 04:29
[대한민국 20대 리포트] <4> 흔들리는 20대의 생활문화 정체성
함께하기보다는 혼자 즐기기, 기성세대 취미활동과 거리
'취업 이력서용' 따로 만들기도
독립영화·인디밴드 즐기고 '간지'나는 아이템 구매 노력
600점대 토익 점수와 2점대 중반 학점의 대학 4학년 김모(29)씨. 지방대에서 수도권 공대로 편입 후 취업을 위해 졸업까지 미룬 그는 취직 전까지 친구들도 만날 생각이 없다. 김씨는 평일엔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와 면접 스터디,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보내고 주말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경마장 안전요원으로 시간당 9,000원을 받으며 일한다. 그는 "이런 현실에서 취미는 연애만큼이나 사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20대 대학생은 학점 등 스펙 쌓기, 아르바이트에 바쁘고, 취업을 해도 20대 직장 초년생의 일상에 개인적 삶이란 없다. 생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자신만의 취미를 가꾸지도 못한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제강회사에 다니는 이모(27)씨는 직장인이 된 지 2년째지만 퇴근 후 TV를 시청하며 쉬는 것 외에는 특별한 취미생활이 없다. 이씨는 "등산 등 스포츠 활동을 하고는 싶지만 자격증을 따기 위한 시험 준비 등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해 취미생활을 즐길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2012년 대한민국 20대의 일상은 팍팍함 그 자체다. 과연 '여가의 향유'라는 게 있는가 싶을 정도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재미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20대의 생활과 문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인터넷 웹진 '고함20' 윤형주(24) 편집장은 "인터넷 공간의 발달로 개인이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창구는 훨씬 다양해졌다"며 "대부분의 20대는 취미 활동을 과거처럼 집단이 함께 하기보다는 개인 차원에서 즐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취미나 여가의 향유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타인의 취미나 취향을 비교 평가하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다. 최신 미국 드라마 보기가 취미라는 대학생 구슬기(26)씨는 "남의 기준으로 내 취미가 판단되는 게 싫다. 내 취미를 이야기해도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남에게 자신의 취미를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20대가 향유하는 문화, 취미, 여가의 속모습이다.
밖으로 드러내는 취미나 여가의 겉모습은 튄다. 차별화다. 그게 잘 드러나는 게 바로 이력서 취미란이다. 20대들은 "열 글자 남짓 들어가는 한정된 칸 안에 자신을 전략적으로 드러내야 하기에 '이력서용 취미'가 필요해진다"고 했다. 대학생 김정찬(24)씨는 "남학생들의 취미가 보통 운동, 당구, 게임 등 특이하지 않은 게 대부분이라 이력서에 쓰기 위해 우쿨렐레(기타 종류의 악기)를 배우는 등 일부러 취미를 만들기도 한다"며 "취미 역시 자기 경쟁력이라 생각하다 보니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취미는 대학 3학년만 돼도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향은 유행에 민감한 패션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학생 패션잡지 '르데뷰'의 오수미(24) 편집장은 "종류가 많지 않은 어그부츠(양털부츠)를 살 때에도 최소한 친구와 같은 색은 피하려고 한다"며 "만약 친구와 같은 제품을 사면 따라 한다고 여길까 봐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대들이 편집매장(개성 있는 디자이너의 브랜드만 모아 놓은 곳)을 즐겨 찾는 것도 이유가 있다. 희소성 있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이런 편집매장이 늘어나면서 더 마이너한 브랜드를 찾기 위해 남들이 안가는 곳을 찾아 다니는 20대들도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남과 다른 것을 찾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차별화 속에서 '간지'(멋을 의미하는 일본어)를 중요시한다는 게 문화전문가의 분석이다. 지난해 <문화로 먹고 살기>를 펴낸 우석훈 박사는 "자라(ZARA) 등 중저가이지만 젊은 층의 패션감각을 살린 SPA 브랜드나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등은 비용은 싸지만 고품격 상품을 원하는 20대의 코드에 맞아 인기를 끌고 있다"며 "지금의 20대는 과거 어느 때의 20대보다 섬세하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수백 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젊은 관객들을 끌어 모았지만 지난해 제작비 100억 원 이상 들어간 '7광구', '마이웨이' 등이 흥행에 참패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 박사는 "섬세한 감성이 필요한 영화의 세부 내용은 미흡한 채 물량에만 의존해 젊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신에 20대는 '혜화, 동', '파수꾼' 같은 독립영화를 보고 록밴드 '국카스텐', '브로콜리 너마저' 등 다양한 인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섬세한 취향을 만족시킨다.
겉과 속이 다르기도 하고 섬세하면서도 변화무쌍한 20대의 문화 정체성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3, 4년 전부터 등장한 '잉여', '루저' 등의 부정적 걀層葯?20대의 공통 코드로 해석하기엔 부족하다"며 "최근 대학생들이 발표한 디도스 수사관련 시국선언이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정치적 목소리 내기 등을 볼 때 20대의 문화 정체성 키워드도 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하기보다는 혼자 즐기기, 기성세대 취미활동과 거리
'취업 이력서용' 따로 만들기도
독립영화·인디밴드 즐기고 '간지'나는 아이템 구매 노력
600점대 토익 점수와 2점대 중반 학점의 대학 4학년 김모(29)씨. 지방대에서 수도권 공대로 편입 후 취업을 위해 졸업까지 미룬 그는 취직 전까지 친구들도 만날 생각이 없다. 김씨는 평일엔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와 면접 스터디,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보내고 주말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경마장 안전요원으로 시간당 9,000원을 받으며 일한다. 그는 "이런 현실에서 취미는 연애만큼이나 사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2년 대한민국 20대의 일상은 팍팍함 그 자체다. 과연 '여가의 향유'라는 게 있는가 싶을 정도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재미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20대의 생활과 문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인터넷 웹진 '고함20' 윤형주(24) 편집장은 "인터넷 공간의 발달로 개인이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창구는 훨씬 다양해졌다"며 "대부분의 20대는 취미 활동을 과거처럼 집단이 함께 하기보다는 개인 차원에서 즐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취미나 여가의 향유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타인의 취미나 취향을 비교 평가하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다. 최신 미국 드라마 보기가 취미라는 대학생 구슬기(26)씨는 "남의 기준으로 내 취미가 판단되는 게 싫다. 내 취미를 이야기해도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남에게 자신의 취미를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20대가 향유하는 문화, 취미, 여가의 속모습이다.
밖으로 드러내는 취미나 여가의 겉모습은 튄다. 차별화다. 그게 잘 드러나는 게 바로 이력서 취미란이다. 20대들은 "열 글자 남짓 들어가는 한정된 칸 안에 자신을 전략적으로 드러내야 하기에 '이력서용 취미'가 필요해진다"고 했다. 대학생 김정찬(24)씨는 "남학생들의 취미가 보통 운동, 당구, 게임 등 특이하지 않은 게 대부분이라 이력서에 쓰기 위해 우쿨렐레(기타 종류의 악기)를 배우는 등 일부러 취미를 만들기도 한다"며 "취미 역시 자기 경쟁력이라 생각하다 보니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취미는 대학 3학년만 돼도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향은 유행에 민감한 패션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학생 패션잡지 '르데뷰'의 오수미(24) 편집장은 "종류가 많지 않은 어그부츠(양털부츠)를 살 때에도 최소한 친구와 같은 색은 피하려고 한다"며 "만약 친구와 같은 제품을 사면 따라 한다고 여길까 봐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대들이 편집매장(개성 있는 디자이너의 브랜드만 모아 놓은 곳)을 즐겨 찾는 것도 이유가 있다. 희소성 있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이런 편집매장이 늘어나면서 더 마이너한 브랜드를 찾기 위해 남들이 안가는 곳을 찾아 다니는 20대들도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남과 다른 것을 찾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차별화 속에서 '간지'(멋을 의미하는 일본어)를 중요시한다는 게 문화전문가의 분석이다. 지난해 <문화로 먹고 살기>를 펴낸 우석훈 박사는 "자라(ZARA) 등 중저가이지만 젊은 층의 패션감각을 살린 SPA 브랜드나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등은 비용은 싸지만 고품격 상품을 원하는 20대의 코드에 맞아 인기를 끌고 있다"며 "지금의 20대는 과거 어느 때의 20대보다 섬세하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수백 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젊은 관객들을 끌어 모았지만 지난해 제작비 100억 원 이상 들어간 '7광구', '마이웨이' 등이 흥행에 참패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 박사는 "섬세한 감성이 필요한 영화의 세부 내용은 미흡한 채 물량에만 의존해 젊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신에 20대는 '혜화, 동', '파수꾼' 같은 독립영화를 보고 록밴드 '국카스텐', '브로콜리 너마저' 등 다양한 인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섬세한 취향을 만족시킨다.
겉과 속이 다르기도 하고 섬세하면서도 변화무쌍한 20대의 문화 정체성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3, 4년 전부터 등장한 '잉여', '루저' 등의 부정적 걀層葯?20대의 공통 코드로 해석하기엔 부족하다"며 "최근 대학생들이 발표한 디도스 수사관련 시국선언이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정치적 목소리 내기 등을 볼 때 20대의 문화 정체성 키워드도 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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